지난 세월은 잡을 수 없고, 시간은 그치지 않는다.
소멸되면 살아나고 차면 비우고
끝나면 시작이 있는 것이니
이 때문에 대의의 방도를 말하고
만물의 이치를 논하는 것이다.
만물의 삶이란 달리는 말이 문틈으로 지나는 것과 같다.
움직여 변화하지 않는 것이 없고
때에 따라 옮기지 않는 것이 없으니
무엇을 다스리고 무엇을 다스리지 않을 것인가?
본래 사물은 스스로 조화할 뿐이다.
年不可擧 時不可止
消息盈虛
終則有始
是所以語大義之方
論萬物之理也
物之生也 若驟若馳
無動而不變
無時而不移
何爲乎 何不爲乎
夫固將自化
- 秋水 5
장자를 읽다 보면 장자의 세계는 거대한 용광로 같다는 생각이 든다. 용광로 속에서는 돌맹이든 쇠붙이든 다 하나로 녹아버린다.장자도 마찬가지다. 그곳은 영(榮)과 욕(辱), 성(聖)과 속(俗), 귀(貴)과 천(賤) 등의 개념이 무의미해지는 용융의 세계다. 그곳은 혼돈이면서 또한 뜨겁게 원시의 생명력이 살아 숨쉬는 곳이기도 하다.
하백이 묻는다. "그렇다면 저에게 어떻게 하란 말씀입니까?" 이런 무차별의 세계에서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묻는다. 대동의 세계에서 무엇을 옳다고 할 것인가? 여기에 대하여북해약은 무상(無常)이라는 변화의 이치를 말한다. 그외엔 확실한 것은 없다는 뜻이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충고를 한다.
첫째, 뜻에 구애되지 말라[無拘而志]!
둘째, 행함을 일률적으로 하지 말라[无一而行]!
셋째, 성대함을 기대하지 말고 형체를 세우지 말라[不恃其成 不位乎其形]!
하나 하나 풀이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전체적으로는 정신의 부드러움과 유연성을 가지라는 말이다. 어디 하나에 고착되지 말라. 그것이 아무리 훌륭한 이즘이라도 마찬가지다. 무엇에 집착하는 순간 생명은 죽는다. 만물은 쉼없이 움직이고 변화하며 그러면서 스스로 조화를 이루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