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나침반

장자[100]

샌. 2009. 12. 29. 16:31

우마는 각각 네 발을 가졌다. 이것은 자연이다.

말에 굴레를 씌우고 소에 꼬뚜레를 뚫는 것은 인위다.

옛말에 이르기를 인위로 자연을 죽이지 말고

기술로 천품을 죽이지 말며

덕으로 명예를 좇지 말라고 했다.

삼가 자연을 잘 지켜 잃지 않으면

이를 참된 나로 돌아간다고 말하는 것이다.

 

牛馬四足 是謂天

落馬首穿牛鼻 是謂人

故曰 無以人滅天

無以故滅命

無以得殉名

謹守而勿失

是謂反其眞

 

- 秋水 6

 

학의 다리는 길고 오리의 다리는 짧다. 말과 소는 네 발을 가졌고 들판을 마음대로 뛰어다닌다. 이것이 자연이다. 자연은 존재의 본성이 제한 없이 드러나는 것이다. 자연은 혼란스럽고 무질서하게 보인다. 카오스의 영역이다. 생물들은 각자의 본성대로 경쟁하고 싸우지만의도된 작위나 욕심이 없다. 어느 생물도 생존에 필요한 영역 이상을 탐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전체적으로는 조화를 이루는 아름다운 세계가 이루어진다.

 

학의 다리가 너무 길다고 자르려고 하는 것은 인위다. 말에 굴레를 씌우고 소에 꼬뚜레를 뚫는 것도 마찬가지다. 인위는 존재가 가지고 있는 본성을 특정의 가치를 기준으로 훼손한다. 인위는 사람의 마음에도 굴레를 씌우고 코뚜레를 뚫는다. 장자가 특히 비판하는 것은 유가에서 내세우는 인(仁)과 의(義) 등의 덕목이다. 그런 인위적인 가치를 지향하도록 함으로써 인간의 자연스런 본성을 왜곡시킨다. 장자는 아무리 좋은 목적이라도 인위적이고 의도된 것은 부정한다. 고정된 가치 체계로 굳어지면 어떤 폐해가 생기는지를 누구보다 잘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위적 체제가 극단적으로 나타난 것이 현재의 기술문명이다. 끝없는 자본의 욕망과 경쟁, 실용주의가 인간을 파괴하고 있다. 편리와 안락을 추구함으로써 우리는 본성으로서의 야성을 잃었고 생활의 많은 부분을 기계에 의존하고 있다. 여기서는 사람마저도 인적 자원으로 취급된다. 존재 자체가 아니라 경제적 효용성이 얼마인가가 한 인간의 가치를 결정한다. 인간의 본성을 왜곡시키는 이런 가치 체계에서는 결코 존재의 기쁨이나 행복을 누릴 수가 없다.

 

장자의 처방은 이런 인위적 가치관을 전복하고 자연적 본성으로 돌아가는 것에 있다. 우리를 옭아매는 이념이나 가치의 굴레에서해방되는 것이다. 인용된 글에 나온 인위, 기술, 덕을 거부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참된 나'로 돌아가는 길이다. 그런 사람을 진인(眞人)이라고 하며 도(道)와 하나된 사람이다. 만약 장자가 지금 이 시대에 나타난다면 가장 근본적인 문명비판자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장자는 철저한 자연주의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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