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통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좋은 책이란 차 한 잔 앞에 두고 저자의 이야기를 직접 듣는 것처럼 생생하게 살아있다. 같이 웃고, 울고, 고개를 끄덕여주기도 한다. ‘고등어를 금하노라’도 그런 책이다. 저자는 독일 남자와 결혼해서 두 자녀를 두고 현재 독일에서 살고 있는 한국 여인이다. 한 개인으로서의 당당한 삶, 또 서로의 개성을 존중해주면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가족의 모습이 부러웠다. 책에는 부부관계, 자녀관계, 환경문제, 과거청산, 시대의식 등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하며 반성하게 하는 내용이 들어있다. 표지에 실린 네 가족의 소개만으로도 어떤 사람들인지 그려질 것이다.
<저자>
고등학교 때 가족과 함께 독일로 이주해 35년을 독일에서 살았다. 칼스루에 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건축사로 공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독일에 거주하며 프리랜서로 문화재 실측 조사와 발굴 연구를 하고 있고, 일감이 없을 때는 글을 쓰고 살림을 하느라 허둥댄다. “우리 아이가 공부는 못해도 성격은 좋으니 걱정 마세요”라며 선생님을 위로하고 딸에게 대놓고 콘돔 사용법을 가르치는 대범한 엄마지만, 댄스 학원에서 남편과 왈츠를 출 때가 가장 행복한 만년 소녀이기도 하다. 성격은 극과 극이지만 이상이 맞는 독일 남자와 결혼해 20년 넘게 살고 있다. 덕분에 돈보다는 시간을, 순간의 안락함보다는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강요와 간섭보다는 자유와 존중을 우선시하는 삶을 실천해 왔다. 세끼 식사를 온 가족이 함께 하기 위해 직업적인 성공을 일부 포기했고, 돈의 노예가 되지 않기 위해 소비를 최소화했으며,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난방과 온수, 자동차와 고등어를 포기했다. 그러나 아이들에게는 절대로 자신의 선택을 강요하지 않았다. 생활 방식뿐만 아니라 공부도 놀이도 연애도 모두 아이들이 원할 때 자기 속도로, 자기만의 방식으로 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었다. 일반적인 시각에서는 뭔가 불편하고 부족해 보이지만, 자기 삶을 자기 생각대로 살아왔기 때문에 삶의 만족도는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다. 한마디로 세상에 부러운 사람이 없다.
<남편>
물리학 박사로 첨단 기기를 개발하는 독일 회사에서 말단 직원으로 일하고 있다. 남을 관리하는 일보다 직접 창조하는 일이 적성에 맞고 보람도 있고 숭고하다고 여겨서 승진할 마음이 터럭만큼도 없다. 상사보다 학력도 높고 나이도 많지만 전혀 개의치 않는다. 하고 싶은 말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툭툭 다 하면서도 자기가 아주 조용하고 유순한 사람인 줄 아는 점이 어떤 때는 매력이고 어떤 때는 밉상이다. 아내의 직업적 성취를 위해 일정 기간 전업주부의 역할을 맡아주고 아이들 일이라면 열 일 제쳐두고 달려오는 괜찮은 아빠지만, 계산기를 옆에 끼고 에너지 절약 방법을 찾아내는 게 취미이다 보니 감히 아내의 샤워 테크닉까지 문제 삼는 간 큰 남편이기도 하다.
<아들>
물리학을 공부하는 대학생. 하고 싶은 짓은 다 하고 사는데도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하다. 초등학교 때 받은 용돈을 지금도 그대로 받는데도 통장에 돈이 차곡차곡 쌓이는 신기한 재주를 가졌다. 바지 두 벌로 사철을 나고 한겨울에도 샌들을 신고 다니다 보니 도무지 돈 쓸 일이 없는 탓이다. 아빠는 아들이 자기를 빼닮아서 그렇다고 우기고, 엄마는 한국식으로 업어 길러서 한국 사람처럼 성격이 좋은 거라고 우긴다. 친구들과 어울려 맥줏집에는 잘 다니지만 술, 담배는 입에도 안 댄다. 맛이 없다는 단순한 이유에서다. 학창 시절 내내 학생회니 합창부니 밴드부니 특별활동에 바쁘더니 대학 시험을 앞두고는 취직까지 했다. 이러고도 공부를 잘할까? 그건 부모도 모른다. 물어보지 않아서.
<딸>
고등학생이고 제일 꼬맹이지만 식구 중에 유일하게 술도 마시고 디스코텍에도 다닌다. 입고 싶은 옷은 빚을 내서라도 사 입는 멋쟁이라 오빠보다 용돈을 세 배나 더 받는데도 늘 돈이 모자라 쩔쩔맨다. 식구 중에서 자기 하나만 정상적인 인간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고, 괴상한 집안에 태어난 돌연변이의 인권 투쟁에 유년기와 사춘기를 홀딱 다 바쳤다. 사랑에 눈이 머는 날이 오면 마초라도 몸과 마음을 바쳐 올인하겠다고 해서 고지식한 아빠를 긴장시킨다. 십대인 딸이 춤추러 가서 새벽까지 안 들어와도 딱 믿고 쿨쿨 자는 우리 같은 부모 있으면 나와 보라 그래!
이들은 세상의 잣대가 아니라 자신이 생각하는 행복의 기준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당당하고 멋지고 행복하다. 이들은 돈 대신 자유와 시간을 먼저 선택했다. 포기한 만큼 품위 있는 삶을 산다. 도시의 호텔 같은 생활을 품위 있게 생각한다면 이들의 삶은 궁상맞게 보일 수도 있다. 독일 사람의 특징이기도 하지만 이들에게 절약은 몸에 배어 있다. 또한 일상의 최우선은 환경이다. 이발도 집에서 하고 겨울에도 방의 난방은 틀지 않는다. 모자를 쓰고 따뜻한 물주머니를 가지고 이불 속에 들어가서 잔다. 이 책 제목인 ‘고등어를 금하노라’도 먼 거리를 수송해 오는 고등어를 식탁에 올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아이 기르기도 철저한 자율과 독립이다. 이 집과 비교할 때 내 경우는 아이를 잘못 길렀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의 자율성을 존중해주지 못했고 가부장적인 권위에 의존한 경우가 많았다. 다시 부모가 된다면 좀 더 자격을 갖춘 아빠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책에는 중학생인 딸에게 엄마가 콘돔 사용법을 가르쳐주는 일화가 나온다. 모델을 구하지 못해 냉장고에서 당근을 꺼내 실습하는 장면은 웃음을 자아낸다.그리고 이어지는 딸과 엄마의 대화는 이렇다.
“콘돔만으로는 불안하니 피임약과 콘돔을 같이 써야겠어.”
“제대로 사용하면 안전해. 콘돔을 쓰면 피임약은 필요 없어.”
“아니야, 엄마. 그러다가 임심하면 내 인생 망치는 거야.”
“피임을 제대로 했는데도 임신이 된다면 그건 할 수 없는 일이야. 네 잘못이 아니라구. 그리고 이 세상에서 네 인생을 망칠 수 있는 건 없어.”
펄쩍 뛰는 딸에게 또 엄마는 이렇게 말한다.
“임신해도 인생 망치는 것 아니야. 불편하긴 하지만 괜찮아. 넌 아기 기르면서 공부할 수 있어. 엄마 아빠도 성심껏 도와줄 거야.”
책에는 독일의 교육제도라든가, 나치 시대의 문제와 과거 청산에 얽힌 얘기, 통독 뒤의 문제, 독도와 관련하여 일본인 학자와 벌인 논쟁 등 사회정치적인 분야에 대한 내용도 있다. 한번쯤 진지하게 생각해야 될 주제들이다. 저자는 역시 한국의 지나친 교육열과 경쟁을 걱정한다. 그는 독일 교육을 지켜보면서 심한 경쟁에 노출된 한국 학생들과 살벌한 교육 현실이 결국은 국가 경쟁력의 약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한다. 강한 나라를 만드는 건 경쟁이 아니라 협동이라는 것이다.
이 책을 젊은 사람들이 많이 읽어봤으면 좋겠다. 집의 두 아이에게도 권하고 싶다. 그래서 깬 의식으로 당당하게 살아가는 멋진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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