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는 프랑스로 입양된 한국계 프랑스인 우니 르콩트(Ounie Lecomte)의 자전적 이야기로, 70년대 서울 근교에 있는 가톨릭계 보육원을 배경으로 한 9살 소녀의 이별과 아픔을 가슴 시리게 그리고 있는 영화다. 어제 저녁 '시네코드 선재'에서 친구들과 함께 보았다.
주인공 진희를 비롯한 아이들이 가여웠지만 결국은 나와 우리들에게도 공통된이야기다. 처음에는 진희가 안타까워서 울고, 나중에는 가련한 생명에 대한 연민으로 울게 된다. 인생은 이별과 상실, 고통의 연속이다. 상처와 아픔이 없는 인생이 어디 있으랴. 진희는어린 나이에 아빠로부터 버림 받고 보육원에 맡겨진다. 작은 영혼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무거운 운명이다. 받아들이기 어려운 현실 앞에서 진희는 아빠를 그리워하며 탈출을 시도하지만 정작 갈 곳도 없다. 진희는 보육원 식구들의 따스한 보살핌을 받으며 조금씩 현실을 인정하게 되고 성장해 나간다. 그러나 아이에게 남겨진 트라우마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지 않을 수 없다.
진희 역을 맡은 김새론이라는 아역배우의 연기가 일품이다. 연기라고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슬픔과 분노의 표정들을 비롯한 말이나 동작이 자연스럽다. 또한 원장을 비롯한 보모, 수녀, 숙희, 소아마비 처녀, 여러 원아들의 인간미 있는 모습도 좋다. 상처 받은 사람들이 모인 보육원이라는 공동체에서 서로를 위로하며 아껴주는 모습들에서 가슴 뭉클한 것이 느껴진다. 그들보다 많은 것을 가진 우리는 누릴 수 없는 아름다운 마음들이다. 또 그런 것들을 그려내는 잔잔하면서 군더더기 없는 화면도 좋다.
영화에는 인상적인 장면들이 여럿 나온다. 진희가 의사 앞에서 보육원에 오게 된 과정을 설명하는 장면도 눈물겹고,'당신은 모르실 거야'를 부르는 장면도 그렇다. 그리고 죽어가는 새를정성스럽게 돌보는 장면도 길게 나온다. 아이들은 새와 자신들을 동일시하고 있었을 것이다.숙희마저 떠나고 혼자된 진희가 구덩이를 파고 자신을 파묻는 장면은 함축하는 의미가 크다. 아빠를 그리워하고 과거에 집착하는 옛세계를 떠나는 의식으로 나에게는 비쳐졌다.입양되는 아이를 앞에 두고 모두 모여 노래로 환송하는 장면도 기억에 남는다. 떠나는 아이의 탈색된 듯한 무표정한 얼굴이 안스럽고, 남은 아이들의 '작별'과 '고향의 봄'을 부르는 목소리가 철없이 명랑해서 더욱 애잔하다.
누군가 그랬다. '삶은 살아가는 게 아니라 살아내는 것이다.' 진희는 결국 비행기를 타고 새로운 세계를 찾아 나선다. 프랑스 공항에 내려양부모를 멀리서 바라보는 진희의 얼굴이 클로즈업 되며 영화는 끝난다. 그때의 슬프면서도 호기심에 반짝이는 진희의 눈동자가 잊혀지지 않는다. 그 눈동자는 어떤 시련이나 고통도 이겨내는 인간의 용기와 희망을 말하고 있다.영화 제목처럼 우리 모두는 어차피 쓸쓸하고 가련한 여행자들이다. 다만 모두가 그렇다는 사실에 따스한 위로를 받으며 각자에 주어진 삶을 살아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