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이외수의 감성사전

샌. 2009. 11. 13. 10:22

평화 전쟁 발발의 합리적 근거

주인공 작중 인물 중에서 가장 목숨이 끈질긴 존재

허수아비 농업에 이용되었던 인류 최초의 로봇

엑스트라 연기에는 태연하고 인기에는 초연한 존재

시계 하루를 시간별로 스물네 토막씩 절단하는 기계


정신병자 제 정신만으로 살아가는 인격자

모래 주로 해변에 많이 산재해 있는 최소 단위의 금빛 혹성

식인종 인구증가와 식량증가를 동일시하는 종족

총알택시 승객과 기사를 장약하여 죽음을 향해 발사되어진 지상용 교통미사일

명예박사 자신이 박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대학이나 학술단체로부터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사람


불만 불연소된 욕심의 찌꺼기

고성방가 소음을 통해 자신의 존재 불필요성을 타인에게 확실하게 알리는 행위

수면제 배고픔은 참을 수 있어도 외로움은 참을 수 없는 사람들이 고통스럽게 일용하는 밤의 양식

자살 가장 강렬한 삶에의 갈망

새가 그 끝에 앉아 있을 때 가장 비웃음을 자아내게 만드는 무기


호롱불 초가삼간 토담벽에 펄럭이는 세월

음주운전 자동차가 운전수 대신 술에 취한 승객을 탑승시킨 채 교통사고를 일으킬 만한 장소를 물색하러 다니는 행위

불행 행복이라는 이름의 나무 밑에 드리워져 있는 그 나무만한 크기의 그늘

말단사원 하는 일은 가장 많으면서 받는 대우는 가장 적은 고용인

엄숙 타인에 대한 존엄성보다는 자신에 대한 존엄성에 집착하여 살아가는 사람들의 전용 상표


학구파 학점구걸파의 준말

개밥그릇 개의 먹이를 담을 수 있는 지상의 모든 용기

주정뱅이 술이 인간을 마셔 버리고 동물만 남아 있는 상태에서 자신이 인간임을 주장하려고 발악적으로 애쓰는 사람

고드름 겨울의 수염

절망 혼수상태에 빠져 버린 희망


거지 부자들에게 자선을 베풀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는 하나님의 심부름꾼

대학입시 대학생을 선발한다는 명목으로 재수생을 배출해 내는 시험제도

빙하시대 지구의 전 생명체가 신으로부터 냉동시설의 혜택을 가장 공평하게 받았던 시대

공명선거 후진국에서 선거 때만 되면 슬로건으로 내거는 낙동강 오리알

동문서답 동쪽으로 가면 문래동이냐고 물으니까 서쪽으로 가면 답십리라고 대답하는 식의 문답


영웅심 광기, 객기, 치기를 배후세력으로 삼고 있는 마음의 부랑아

물비늘 침묵의 호수 위로 떠다니는 바람의 희디흰 잔뼈들

우박 구름의 진신사리

아파트 인간 보관용 콘크리트 케비닛

자만심 이 세상 만물들이 모두 자신의 스승임을 자각하지 못한 사람들이 필수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가장 심오한 착각


인간이 만들어 낸 법은 만물을 구속하고 신이 만들어 낸 법은 만물을 자유롭게 한다

무지 자신의 허상에 가리워져 자신의 진체가 보이지 않는 상태

계급 조직이 인간을 조종하기 편리하도록 착안된 견식표

체면 자신을 인격적인 존재라고 확신하고 있는 사람들이 내면에는 동물적인 욕망의 찌꺼기를 간직하고 있으면서 외면에는 이성적인 겸손의 미덕을 드러내 보이려고 할 때 습관적으로 착용하는 가면

보석 허영을 장식하는 고가의 돌멩이


화장 여자들이 자신의 모습을 실물보다 아름답게 만들겠다는 망상에 사로잡혀 화공약품 따위로 얼굴을 도색해서 변조시키는 기술

세대차이 관심과 대화에 의해 좁혀지고 아집과 편견에 의해 멀어진다

아내 남편들이 이십대에는 아내, 삼십대에는 마누라, 사십대에는 여편네, 오십대에는 할망구라고 부르는 가정의 수호천사

바보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조차도 모르면서 살고 있는 사람들

인간 지구 피부에 기생하는 암세포에 상응하는 미생물


자연보호 전 인류가 집단자살로써 자연에 귀의할 때야 비로소 성취될 수 있는 과업

질서 자연으로부터 이탈한 인간들이 보다 부자연스러운 삶을 영위하기 위하여 도덕과 양심을 담보로 조리와 순서를 지켜 스스로를 속박하는 상태

존경심 높이 세워져 있는 스탈린의 동상을 바라볼 때가 아니라 그 동상의 머리 위에다 똥을 싸갈기는 비둘기를 바라볼 때 생겨나는 것

배금주의자 염라대왕까지도 황금으로 매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도둑질 가진 자들이 못 가진 자들에게 부를 나누어 주기 이전에 못 가진 자들이 가진 자들의 수고를 자발적으로 거들어 주는 자선 범죄 행위


이민 자신을 다른 나라에 내다버리는 행위를 점잖게 이르는 말

잡초 인간들에게 비위를 맞출 줄 모르는 풀들

하루살이 하루 만에 한평생을 사는 벌레

지렁이 우울한 지하의 방랑자

앵두 유년시절 누나의 가시 찔린 손끝에 맺혀 있던 선홍빛 피 한 방울


쓰레기 지구가 바라보는 인간

삼각관계 재능 없는 작가들이 일용할 양식처럼 울궈먹는 작품의 뼈다귀

보신탕 음식문화가 가장 다양하게 발달해 있는 민족들에게서 볼 수 있는 영양식

성불구자 성불하기를 구하는 사람

출근 경제적으로 궁핍하지 않은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자신을 인간에서 로봇으로 전환시키는 행위


스트레스 가슴 밑바닥에 침전된 불만의 찌꺼기를 연소하지 못할 때 생겨나는 유독성 폐기물

호수 온 하늘을 가슴에 담는 사랑

속물근성 아무런 철학도 없고 아무런 고뇌도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의 가장 요긴한 생활필수품

대머리 어느 모임이든 동참하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 자리를 빛내줄 수 있는 이동식 인간 서치라이트

강대국 평화를 가장 많이 부르짖으면서 전쟁에 가장 많이 관여하는 나라


피뢰침 뇌성벽력 속에 오직 고요함을 지키며 기다리다가 일순간에 천둥번개를 낚아채 버리는 원효대사의 낚시 바늘

전쟁 인류에게 평화를 가져다주기 위해 인류의 평화를 파괴시켜 버리는 정신질환적 집단행위

선진국 다른 나라보다 먼저 물질과 문명을 선택하고 자연과 인간을 버린 나라

붕어 자연이 문명의 탁류에 휩쓸려 허우적거리고 있는 인간을 자연 속으로 낚아올리기 위해 가장 널리 사용하는 미끼

영혼 우주 무임승차권


안개 떠도는 물의 혼백

거품 공허의 무정란

인생 인간답게 살기 위해 미래를 향해 끊임없이 걸어가야 하는 비포장도로

결혼 사랑에 대한 착각을 최종까지 수정하지 않은 남녀들이 마침내 세월의 함정 속에 투신하는 사건

사형수 세상의 모든 속박으로부터 영원한 자유를 선고받은 사람


갈대 시린 가을 하늘가에 빠르게 한 획씩 그어 놓은 신선의 가벼운 세필 자국

메아리 소리의 그림자

얼굴은 비추어지지 않고 마음만 비추어지는 천상의 해맑은 거울

외등 어둠 속에 박혀 있는 달마의 물기 어린 눈알 하나

눈물 지상에서 가장 투명한 시(詩)


석탄 속에 들어 있는 목화구름

지팡이 황혼의 동반자

대자대비의 표정으로 가부좌를 틀고 앉은 또 하나의 부처님


여자 남자들에게 가장 난해한 학술자료다. 아무리 연구를 계속해도 그 본질이나 특성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지 않는 존재다. 때로는 얼음같이 차갑고 때로는 불같이 뜨겁다. 때로는 가시처럼 날카롭고 때로는 솜털처럼 부드럽다. 때로는 풀잎처럼 연약하고 때로는 칡뿌리처럼 강인하다. 남자들에게 사랑의 열병을 앓게 만드는 독향을 간직하고 있다. 사랑에 약하고 질투에 강하다. 어머니가 되었을 때 가장 성스럽고 아내가 되었을 때 가장 철부지가 된다. 변덕이 심하다. 눈썹을 한 번씩 깜빡거릴 때마다 변덕은 두 번씩 일어난다. 남자는 마음에 의해 자신을 변모시키지만 여자는 생각에 의해 자신을 변모시킨다. 그러나 그 어떤 문장으로도 여자를 확실하게 설명할 수는 없다. 단지 확실하게 설명할 수 있는 점은 이 세상 여자들이 나이가 들면 할머니로 변하고 마는 사실이다.

- 이외수의 '감성사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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