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어느 관리의 죽음

샌. 2009. 10. 8. 10:05

지난 번 대학 동기들과 등산할 때 S가 안톤 체홉의 단편집을 읽고 있다면서 그중에서 '어느 관리의 죽음'이라는 작품의줄거리를 말해 주었다. 그때 내가 무척 흥미있게 들어서 그랬는지 뒤에 이 단편의 전문을 보내왔다. 아주 짧은 소설이지만 독수리 타법으로 찍느라 그래도 몇 시간이나 걸렸다고 했다.

'어느 관리의 죽음'은 예전에 읽었던 작품이었다. 그러나 감동적으로 내용을 전하는 S 앞에서 그런 사실을 밝힐 수는 없었다. 아마 젊었을 때였다면 나도 읽었다고 말해서 김을 빼놓았을지도 모른다. 그날 나는소설의 내용보다도 책을 읽고 그 감동을 친구에게 전해주는 S의 마음이 무척 고마웠다. 중년의 남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나오는 얘기란 뻔하지 않은가. 현실에 얼마나 잘 적응하며 즐기는지, 아니면 공허한 현실비판의 목소리들, 늘 똑 같은 건강 얘기, 또는 능글능글한 돼지 비계덩어리 같은 농담들이 대부분인데 산길을 걸으며 순수문학 작품에 대한 얘기를 나누는 것은 색다르고 즐거운 경험이었다. 그리고 감동에 젖어 들떠 말하는 S의 소년 같은 마음이 부러웠다.

S가 보내온 '어느 관리의 죽음'은 이렇다.

어느 아름다운 밤에, 또한 이 밤에 어울리는 회계 검사관 이반 드미드리치 첼브야코프(구더기라는 뜻)가 객석의 두 번째 줄에 앉아, 오페라글라스를 쓰고 <코르네비유의 종(種)>을 관람하고 있었다. 그는 한없이 행복감에 도취되어 관람하고 있었다. 그러나 갑자기 --소설 속에선 자주, 이 ‘그러나 갑자기’에 부딪힌다. 작가들이 이를 자주 사용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며, 인생은 그만큼 ‘갑자기’에 가득 차 있는 것이다--- 그의 얼굴이 일그러지고 눈알이 빠져 나올 듯 하고 숨이 멎는가 싶더니….. 그가 눈에서 오페라글라스를 떼기가 무섭게 몸을 숙이고… 엣취! 보시다시피 재채기를 했던 것이다. 어느 장소에서 누군가 재채기를 했다고 해서 해가 될 것은 없다. 농부도 하고, 경찰서장도 하고, 때로는 삼등관이라도 엣취! 하고 재채기를 한다. 사람이라면 누구든 재채기를 하는 것이다. 첼브야코프는 전혀 당황하는 기색 없이 손수건을 꺼내어 코를 닦더니, 점잖은 사람이 의례 그렇듯이 자기의 재채기 소리가 누구에게 불쾌감을 주지는 않았을까 하고 주위를 살펴보았다. 그런데 그 순간, 그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자기 바로 앞 객석에 앉아 있는 몸집이 작은 노인이 손수건으로 대머리와 목덜미를 닦아내면서 뭐라고 투덜거리는 것을 보았다. 그 노인이 누구인지 살펴보자, 첼브야코프는 그 사람이 운수성의 칙임관 브리즈잘로프라는 것을 알았다.

‘저 사람한테 침이 튀어 버렸군!’ 첼브야코프는 생각했다. ‘내가 모시는 장관이 아니고 다른 부서의 장관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입장이 난처해지는 걸 사과해야겠어.’

첼브야코프는 헛기침을 한번 하고 나서 몸을 앞으로 숙이며 칙임관에게 다가가 나직이 말하였다.

“용서하십시오, 각하. 저도 모르게 실수를 해서…. 그만….”

“괜찮아, 괜찮아…”

“아무쪼록 죄송합니다, 저는 조금도…, 그렇게 할 생각은….”

“알았네, 자리에 앉게… 방해는 안 해 주면 좋겠어!”

첼프야코프는 당황하기도 하고 멋쩍은 느낌이 들어 머리를 긁적이며 자시 무대를 쳐다보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그는 구경을 하면서 이제 다시 행복한 기분으로 되돌아갈 수가 없었다. 걱정이 그를 불안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막간에 그는 브리즈잘로프에게 다가가서 그의 곁을 서성거리다가 용기를 내어 이렇게 말했다.

“실수를 했습니다, 각하… 용서해 주십시오… 저는 뭐… 그렇게 할 생각은…”

“아아, 괜찮아… 나는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자네는 또 같은 말을…”

칙임관은 이렇게 말하며 신경질적으로 아랫입술을 부르르 떨었다

‘잊어버리고 있었다면서. 그렇게 말하는 장본인의 눈에는 분노가 서려있지 않은가?’하고 첼브야코프는 믿지 못하는 듯이 칙임관을 슬쩍 곁눈질하면서 생각했다.’말도 하기 싫은 모양이지. 이건 아무래도 , 내가 그렇게 할 생각이 없었다는 것을…. 그것은 자연발생적이라는 것을 설명하지 않으면 안 되겠는데. 그렇지 않으면 내가 고의적으로 침을 뱉었다고 생각할 테니까 말이야.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더라도 나중엔 반드시 그렇게 생각하게 될 걸!.....’

집에 돌아가자, 첼브야코프는 자기의 실수를 아내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그런데 그에게는 아내가 그 사건을 하찮을 일로 여기고 있는 것 같이 느껴졌다. 사실 그녀도 처음에는 걱정하기도 했으나, 얼마 안 있어 브리즈잘로프가 다른 부서의 장관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별로 신경 쓰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한번 가셔서 사과하고 오세요.”

그녀는 무뚝뚝하게 말했다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억제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여길지도 모르니까요…”

“바로 그거야. 그 점이라니까!. 나는 사과했어. 그러나 그 사람은 뭔가 무뚝뚝하게 말이야…. 한 마디도 확실한 대답을 해주지 않거든. 더욱이 천천히 말할 틈도 없었지.”

다음날 첼브야코프는 새 양복을 입고, 이발까지 하고 브리즈잘로프의 집으로 사과하러 갔다…. 칙임관의 응접실에 들어가자, 그는 그 곳에서 많은 진정자와 진정자에 파묻혀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칙임관을 보았다. 몇 사람의 진정자에게 질문을 하고 나서, 칙임관은 첼브야코프레게로 시선을 돌렸다.

“어젯밤 아르카지아 극장에서 있었던 일을 기억하고 계십니까. 각하?”

첼브야코프가 용건을 말하기 시작하였다.

“저는 그만 재채기를 해서… 실수를 했습니다… 용서를.”

“쓸데없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가? 자, 그럼 당신은 무슨 일인가요?”

칙임관은 다음 진정자에게 물었다.

‘잠시도 상대하기 싫은 모양이군!’하고 쳅브야코프는 새파랗게 질려 생각했다 ‘말하자면, 화를 내고 계시는 거야…. 아니 이대로 물러날 수는 없어! 해명해야겠어….’

칙임관이 마지막으로 진정자와의 문답을 마치고 거실로 나가려 했을 때 첼브야코프는 한걸음 앞으로 나와 나지막이 말하기 시작했다.

“각하! 제가 감히 각하를 뵈러 온 것은 오로지 뉘우치는 마음에서 온 것입니다… 결코 고의적으로 한일은 아닙니다. 그것은 각하께서 잘 알고 계시는 바와 같습니다!”

칙임관은 짜증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한 손을 내저었다.

“자네는 사람을 놀리고 있나?”

그는 이렇게 내 뱉고 문밖으로 사라져 버렸다.

‘무엇을 놀린다는 것일까?’ 첼브야코프는 곰곰이 생각했다. ‘조금도 놀린 것은 없지 않은가? 칙임관이면서도 이렇게 이해하지 못할까! 그렇다면 이렇게 잘난 체하는 사람에게는 두 번 다시 사과를 말아야지! 쳇. 빌어먹을! 좋아 그 작자에게 편지를 보내주자. 이제 직접 방문하는 것은 그만 두어야겠어! 그렇게 나오는데 누가 찾아와 줄 것인가 말이야!’

집으로 돌아가는 도중 첼브야코프는 이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칙임관에게 편지를 쓰지는 않았다. 생각을 거듭했으나, 아무래도 쓸 말이 생각나지 않았던 것이다. 다음날 그는 또 해명하러 갔다.

“제가 어제 각하를 찾아뵈었던 까닭은.”

그는 칙임관이 그에게 찾아온 용건을 물으려고 쳐다보았을 때 말하기 시작했다

“각하가 말씀하신 것처럼 놀리려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저는 재채기를 하여 실수했던 것에 대해 용서를 구하려 했던 것입니다…. 제가 어떻게 각하를 놀리는 그런 건방진 짓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만약 제가 놀리는 짓 따위를 했다면, 그… 각하에 대한 경의라는 것이… 없어지는 것이며….”

“썩 나가!”

갑자기 칙임관은 노기에 찬 얼굴빛이 되더니 분노에 떨면서 고함을 질렀다.

“왜 그러십니까?”

공포에 질려 얼굴이 하얘진 챌브야코프가 물었다.

“썩 나가!”

칙임관이 발을 동동 구르며 다시 소리를 질렀다.

첼브야코프의 뱃속에서 무엇인가가 찢어졌다. 그에게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방문까지 뒷걸음치다가 가까스로 거리로 나와 터벅터벅 걸어갔다… 힘겹게 자기 집에 도착하자, 그는 양복도 벗지 않고 소파에 누워… 그대로 죽어 버렸다.


극장에서 사소한 재채기 하나가 결국은 주인공을 죽음으로 몰고간다. 작은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 자학을 넘어 자기파괴의 결과를 낳았다. '구더기'라는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이 사람의상급관리에 대한태도는 예의라고 부를 수도 없는 병적인 것이다. 그런 병적인 집착으로 죽음에 이르는 어리석음이 어찌 이 소설의 주인공만이라 할 수 있을까. 정작 중요한 것은 무시하고 사소한 것에는 목숨을 건다. 체홉이 드러내려는 것은 당시대인들의 죽어가는 정신 상태였고, 그것은 지금도 유효하다고 본다.

어차피 인생은 오해와 착각의 연속인지 모른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오해나 착각에도 긍정적인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내가 사랑 받고 있다는 착각, 세상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착각 등은 나무랄 수 없는 것들이다. 그런 오해나 착각은 인생을 밝고 풍요롭게 한다. 반면에 자기파괴적인 오해나 착각도 있다. 이 소설에서 묘사하고 있는 것처럼 극단적이지는 않더라도 일상에서 잘못된 판단이나 선입견으로 갈등이나 마찰의 원인이 되는 경우는 허다하다. 아무렇지도 않은 일을 과대포장해서 스스로를 괴롭히기도 한다. 아마 우리가 느끼는 인생고의 대부분은 스스로가 만든 자승자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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