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UP

샌. 2009. 8. 21. 20:15



휴가 마지막 날, 아내와 시내 나들이를 했다. 먼저 대한극장에서 영화 '업'(UP)을 보았다. 픽사에서 만든 애니메이션인데 그림이나 내용이 기대 이상으로 좋았다.

 

모험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세상과 단절되어 살아가는 할아버지 '칼'에게 극적인 순간이 찾아온다. 이 영화에서 가장 멋진 장면, 수천 개의 풍선으로 집을 하늘로 들어올리며 드디어 미지의 땅으로 날아간다. 그러나 이때부터 고난이 시작되고, 소년 '러셀'과 함께웃고 울리는 대모험이 시작된다. 재미와 감동을 함께 주는 동화 같은 애니메이션이다.

 

영화가 주는 메시지는 인생의 진정한 성공은 모험이나 성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일상 속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얻어진다는 것이다. 할아버지는 평생의 꿈을 쫓아 세상으로부터 탈출하지만 결국 다시 세상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사소한 일상에서 행복과 삶의 의미를 발견한다. 나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많은 영화였다.

 




어제 세찬 소나기가 지난 탓에 날씨는 더할 수 없이 맑고 깨끗했다. 로즈가든과 한옥마을에서 보는 하늘역시 푸르고 밝았다. 햇볕은 따갑지만 그늘은 시원해서 걷기에 좋았다.

 

남산길을 걸었다. 땀이 나지 않을 정도로 느릿느릿 걸으며 걷는 기쁨을 만끽했다.

 

나는 다시 걷기로 했다

다리는 액셀이나 브레이크를 밟으라고만 있는 것이 아니다

주차장에서 현관까지 몇 걸음 그리곤 에스컬레이터 엘리베이터

막대기처럼 우두커니 서 있으라고만 있는 것도 아니다

이제부터 내 다리를 되찾아 쓰기로 했다

한 몸 이동시키는데 내 덩치 열 배도 넘는 차를

씽씽거리고 낑낑거리며 몰고 다니며

어느 길로 빠져갈까 어디에다 세워둘까

어느 놈이 추월할까 치사하게 끼어들까

박을까 박힐까 그따위 이제 신경 안 쓸 테다

골목길로 시장길로 맘대로 들어섰다가

주름진 노인네 좌판에 나물 한 줌 사드리고

출출하면 포장마차 떡뽁이도 사 먹을 거다

그간 저놈 때문에 간 곳보다 못 간 곳이 많았다

휙휙 도로만 스쳐왔을 뿐 사람의 길을 잃어버렸다

족쇄에서 풀려난 다리에 살갑게 바람이 감기고

딱딱한 아스팔트 속에서도 대지가 품을 벌린다

새는 날고 물고기는 헤엄치고 사람은 걷는다

날개와 지느러미와 다리는 한 생이 나아가기에 족하지

나는 다시 길 위의 행인이다

 

- 다리를 되찾다 / 조향미

 







남산을 오르는 길에 소나무 숲에 들어서 신선 흉내도 내었다. 숲은 조용하고 아늑했다. 가만히 눈 감고 있으니 심산유곡에 다름 없었다.

 

정상을 오른 후 반대쪽으로 내려왔는데 길을 잘못 들어 이태원까지 가게 되었다. 덕분에 처음으로 이태원 거리도 구경했다. 동네에 돌아와서 오랜만에 생맥주를 하며 그간 못했던 여러 얘기를 나누었다. 비록 헛소리일지라도 말을 주고받다 보면 서로간에 이해의 폭이 넓어지게 된다.그리고 누구나 꿈꾸는 인생의 'UP'은 오르는 것이 아니라 내려오는 데서 얻어지는것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자기를 버리고 죽이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식으로, 남편으로, 아버지로 제 노릇을 하며 산다는 것이 여간 만만치 않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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