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열애 / 이수익

샌. 2009. 10. 31. 09:25

때로 사랑은 흘낏

곁눈질도 하고 싶지.

남몰래 외도(外道)도 즐기고 싶지.

어찌 그리 평생 붙박이 사랑으로

살아갈 수 있나.

 

마주 서 있음만으로도

그윽이 바라보는 눈길만으로도

저리 마음 들뜨고 온몸 달아올라

절로 열매 맺는

나무여, 나무여, 은행나무여.

 

가을부터 내년 봄 올 때까지

추운 겨울 내내

서로 눈 감고 돌아서 있을 동안

보고픈 마음일랑 어찌 하느냐고

네 노란 연애편지 같은 잎사귀들만

마구 뿌려대는

아, 지금은 가을이다. 그래, 네 눈물이다.

 

- 열애 / 이수익

 

암수가 딴그루인 나무들이 많이 있지만 시인들이 유독 은행나무 사랑을 노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시인뿐만이 아니라 누구나 마찬가지다. 학창 시절에 노란 은행잎을 책갈피에 끼워두었다가 편지를 쓸 때면 함께 보내곤 했던 경험이 누구나 있을 것이다. 또 은행잎으로 노랗게 덮인 길을 다정히 걸어가는 연인의 모습 역시 더없이 잘 어울리는 풍경이다.

 

지상의 모든 존재들은 각자의 사랑법이 있다. 천년의 세월을 움직이지 않으면서 서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 들뜨고 온몸 달아오르는 은행나무의 사랑법은 인간에게는 경이롭게 보일 수밖에 없겠다. 아마 은행나무가 인간의 사랑을 본다면 허기진 듯 이 짝 저 짝으로 사랑을 찾아 돌아다니는 모습이 가련하게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떠돌이 사랑역시 존재의 숙명인 걸 어찌 하겠는가. 바람이 불면 은행잎은 눈물처럼 흩날린다. 올 가을에는 노란 은행나무 아래로는 가지 않아야겠다.

 

가을...., 시월의 마지막 날이다.

'시읽는기쁨'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울의 예수 / 정호승  (0) 2009.11.09
가을날 / 릴케  (3) 2009.11.05
지구 신발 / 함민복  (0) 2009.10.26
조개의 깊이 / 김광규  (0) 2009.10.20
새들을 날개 위에 올려라 / 임보  (0) 2009.1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