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너에게 이르나니 삼왕오제의 다스림이란
명분은 다스림이라 하지만 실은 어지러움이 막심했다.
유묵이 숭상하는 삼왕의 지혜란
위로 일월의 밝음을 어그러지게 하고
아래로 산천의 정기를 배반하고
가운데로 사계절의 운행을 잃게 했다.
그들의 지혜란 전갈과 독별의 꼬리보다 혹독하여
눈에 띄지 않는 짐승들조차
타고난 본성을 유지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도리어 스스로 성인이라 하니
부끄러운 일이 아닌가?
진실로 부끄러움이 없는 자들이다.
余語汝 三王五帝之治天下
名曰治之 而亂莫甚焉
三皇之知
上悖日月之明
下山川之精
中墜四時之施
其知참於뢰치之尾
鮮規之獸
莫得安其性命之情者
而猶自以爲聖人
不可恥乎
其無恥也
- 天運 5
노자와 공자의 대화 중 일부인데 여기서도 도가의 역사관이 잘 드러나 있다. 태평성대라 불리는 삼황오제 시대를 도가는 인위적 제도로 인간을 구속하는 출발점으로 보기 때문에 부정한다. 특히 삼황오제의 마지막 시기인 요순시대는 백성의 마음을 경쟁시키며 분별심이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도(道)로부터 멀어지게 되었다고 본다.이런 견해는 반제도, 반문명을 표방하는 도가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 도의 관점에서는 역사는 퇴보하고 있다. 도가가 그리는 황금시대는 역사 이전의 원시시대다. 인간의 지력이 발달하면서 사람들은 스스로를 중하게 여기고 하늘을 가볍게 여겼다. 그러므로 도의 회복은 곧 원시시대로의 복귀를 뜻한다. 물론 도가에서 말하는 원시시대는 우리가 연상하는 문명 이전의 야만시대와는 다르다.
내가 볼 때 콜럼부스가 상륙하기 전의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삶이 도가가 그리는원시사회에 근사하지 않을까고 생각한다. 그들의 세계관은 지금의 우리와는근본적으로 달랐다. 우리 시대와 같은 이기심이나 탐욕을 찾아보기 어렵다. 그들은 뭇 생명체와 조화를 이루며, 모든 존재는 서로연결되어 있다는 믿음으로살았다. 자연세계는 우리와 한 몸이다. 주객의 관계도 아니고 이용 대상도 아니다. 다시 그런 영적인 깨우침을 회복하는 것이 도의 길이라고 장자는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