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나침반

장자[91]

샌. 2009. 10. 24. 08:14

그러나 준엄한 뜻이 아니라도 고상하고

치세를 위한 인의가 없이도 수기(修己)하고

조정에 공명을 세우지 않더라도 다스려지고

속세를 등지고 강과 바다에 노닐지 않더라도 한가로우며

도인의 양생술이 아니라도 장수한다면

잃지 않음이 없으면서도

갖지 않음이 없을 것이다

그리하여 맑고 고요하여 끝이 없으니

온갖 아름다움이 따른다.

이것이 천지의 도요, 성인의 덕이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염담, 적막, 허무, 무위를

천지의 화평이요,

도덕의 바탕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若夫不刻意而高

無仁義而修

無功名而治

無江海而閒

不道引而壽

無不忘也

無不有也

澹然無極

而衆美從之

此天地之道 聖人之德也

故曰

夫염淡寂寞虛無無爲

此天地之平

而道德之質也

 

- 刻意 1

 

장자는 다섯 종류의 선비를 예로 들고 있다. 세상을 떠나 세속과 다르게 살아가는 '산골의 선비'[山谷之士], 인의와 충신의 길을 가는 '치세의 선비'[治世之士], 나라에 공을 세우고 다스리는 '조정의 선비'[朝廷之士], 낚시를 하며 한가하게 살아가는 '강해에 노니는 선비'[江海之士], 자연의 기를 기르고 장수를 목표로 하는 '양생을 하는 선비'[道引之士]가 그들이다. 그러나 이들의 뜻과 의지는 한계가 있다. 장자가 보기에 이들의 미덕은 지엽적일 뿐 삶의 근본과는 거리가 멀다. 항상 장자가 하는 말이지만 그런 유위(有爲)의 마음을 벗어남으로써 천지의 도와 하나 되는 완성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 성인은 무엇을 함이 아니라 그저 고요히 노닐 뿐이고 단순하며 맑고 고요하다.

 

여기서 보듯 노장철학은 세속을 떠난 은둔을 두둔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일부에서 보듯이지배층을 위한 이념은 더더구나 아니다. 또 도교의 양생술 따위는 언급할 가치도 없다. 내가 장자 읽기를 통해 배우는 것은 '가치의 전복'이다. 장자에는 세상적 가치관에 대한 통쾌한 반전이 있다. 지금 이 단계에서 나에게 장자가 무엇인지를 묻는다면 '부정을 통한 긍정'이라고 답하고 싶다. 파괴해야 새로운 것을 세울 수 있는 법이다. 그런 점에서 장자는 니체와도 닮았다고 할 수 있다. 장자는 내 잠든 혼을 깨워주는 번개며 천둥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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