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나침반

장자[89]

샌. 2009. 10. 11. 15:03

학은 날마다 목욕을 하지 않아도 희고

까마귀는 날마다 검정 칠을 안 해도 검소.

흑백이란 자연이므로 분별할 것이 못 되며

명예란 볼거리에 불과한 것이라 키울 것이 못 되오.

샘물이 말라 고기들이 모두 뭍으로 나가

서로 물기를 끼얹고 거품으로 적셔주는 것은

강과 바다에서 서로 잊고 모른 척하는 것만 못할 것이오.

 

夫鵠不日浴而白

鳥不日黔而黑

黑白之朴 不足以爲辯

名譽之觀 不足以爲廣

泉학 魚相與處於陸

相구以濕 相濡以沫

不如相忘於江湖

 

- 天運 4

 

공자가 노자를 찾아가 한 수 배우기를 청했다. 노자는 공자가 말하는 인의(仁義)는 모기나 등에와 같아서 사람을 근심스럽게 하여 마음을 막히게 한다고 가혹하게 답한다. 도(道)가 사라진뒤에 인의로 세상을 구하려는 것은 마치 북을 치며 죽은 자식을 찾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이라는 것이다. 도리어 고통만 연장시켜 줄 뿐 근원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가문 땅에서 물고기들이 서로 거품을 뿜어주며 허덕이는 것과도 같다. 저수지의 수문을 열고 시원한 물을 대주어야 한다. 이 비유는 예수가 사마리아 여인에게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주겠다는 말을 연상시킨다.

 

장자에게는 개인의 각성을 통한 도의 회복이 우선이다. 그런 정신혁명이 요원의 불길처럼 번져가야 한다. 공자처럼 인위적인 이데올로기나 정치 체제로 사회를 개선시키려는 시도는 세상을 더 복잡하고 어지럽게 할 뿐이다. 차라리 정부는 없는 게 낫다. 노자가 말하는 '소사과욕'(少私寡欲)의 인민들이 자치적으로 꾸려나가는 소규모 공동체가 가장 도에 가까운 형태다. 이것이 현실적으로 얼마나 가능할 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파국적인 자본주의 체제에서 그나마 우리를 살릴 유일한 대안이 아닌가 싶다.

 

'삶의나침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장자[91]  (0) 2009.10.24
장자[90]  (0) 2009.10.17
장자[88]  (0) 2009.10.10
장자[87]  (0) 2009.09.29
장자[86]  (0) 2009.09.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