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등짐 / 임보

샌. 2009. 9. 10. 09:11

꿈에서는 그 꿈이 꿈인 줄 모르듯이

우리 사는 이 세상도 아마 그런갑다

 

꿈에서 얽힌 일들

깨고 나면 다 풀리듯

 

이 세상 근심 걱정도

깨고 나면 다 풀릴 걸

 

등짐만 공연히 지고

등이 휘게 가는 갑다

 

- 등짐 / 임보

 

살아 생전 고된 날들의 연속이었던 외할머니, 돌아가신 뒤 가장 편안한 얼굴을 보이셨다. 등짐을 내려놓으니 그리 마음 편하셨나 보다. 삶이 버겁고 힘들지 않은 사람 어디 있으랴. 모두들 무거운 등짐 하나씩 지고 사막길을 걸어간다. 그러나 누굴 탓할 수도 없다. 스스로 자청해서 진 등짐이고, 근심 걱정 또한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던가.

 

그것이 인생이다. 죽어서야 벗어놓을 수 있는 등짐 하나씩 지고 우리는 살아간다.그 안에는 등이 휘어질 듯 무거운 돌맹이가 들어있다. 다들 돌맹이를 황금덩이로 착각하고 있을 뿐이다. 어쩌다 다 부질없다는 걸 느끼기도 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내려놓을 줄은 모른다. 그러면서도 연신 돌맹이를 주워 제 짐에 채운다.

 

이 시의 매력은 '갑다'라는 말이 주는 감칠맛 나는 어감에 있다. 그 말은 인생을 가볍게 보라고 하는 것 같다. 인생이 괴로운 건 인생을너무 대단한 것으로 보는 데서 오는 게 아닐까. 어차피 등짐을 지고 가야 할 인생길이라면 쉬엄쉬엄 놀면서 가자. 오다가다 만난 길동무와 실없는 농담도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