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풍장 1 / 황동규

샌. 2009. 8. 17. 18:26

내 세상 뜨면 풍장시켜다오

섭섭하지 않게

옷은 입은 채로 전자시계는 가는 채로

손목에 달아 놓고

아주 춥지는 않게

가죽가방에 넣어 전세 택시에 싣고

群山에 가서

검색이 심하면

곰소쯤에 가서

통통배에 옮겨 실어다오

 

가방 속에서 다리 오그리고

그러나 편안히 누워 있다가

선유도 지나 무인도 지나 통통소리 지나

배가 육지에 허리 대는 기척에

잠시 정신을 잃고

가방 벗기우고 옷 벗기우고

무인도의 늦가을 차가운 햇빛 속에

구두와 양말도 벗기우고

손목시계 부서질 때

남몰래 시간을 떨어뜨리고

바람 속에 익은 붉은 열매에서 툭툭 튕기는 씨들을

무연히 안 보이듯 바라보며

살을 말리게 해 다오

어금니에 박혀 녹스는 白金조각도

바람 속에 빛나게 해 다오

 

바람 이불처럼 덮고

化粧도 解脫도 없이

이불 여미듯 바람을 여미고

마지막으로 몸의 피가 다 마를 때까지

바람과 놀게 해 다오

 

- 풍장(風葬) 1 / 황동규

 

외할머니는 가장 편안한 얼굴로 누워 계셨다. 피부는 아직도 따뜻했다. 돌아가신 모습이 살아계실 때보다 더 생명으로 환하다는 것은 역설적이었다.산 사람들의 통곡이 도리어 기이하게 느껴질 정도로 죽음은 멀고 무서운 게 아니었다.

 

장례의식이란 것도 산 사람들을 위한 치유의 절차였다.사람들은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해서 복잡한 의식을 만들어낸 것 같다. 죄책감을 잊기 위해서, 자신에게도 닥칠 죽음이 두려워서 그렇게 복잡한 절차들을 고안했는지도 모른다. 죽음이 두려우니 죽음에 특별한 의미를 두려고 한다. 그러나 망자는 알 것이다. 삶과 죽음의 경계가 과연 무엇인지를, 그리고 죽음 역시 농담처럼 가볍고 사소한 것임을...

 

외할머니의 장례를 치르면서 죽음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이별의 서러움이야 어찌 없겠야마는 그래도 나는 담백하고 담담하게 이 세상을 뜨고 싶다. 의식이 명료한 가운데 웃으며 갈 수 있다면 더욱 좋겠지. 또한 가족들에게도 그렇게 부탁하고 싶다. 내 죽거든 눈물을 흘리지 말 것, 나를 위한답시고근엄한 종교의식도 하지 말 것,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지도 말 것, 조용히 화장해서 나무 아래 뿌리거나 아니면 흐르는 물에 띄워줄 것...

'시읽는기쁨'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세월이 오며는 / 김대중  (0) 2009.08.23
죽은 줄도 모르고 / 김혜순  (0) 2009.08.20
아이를 키우며 / 렴형미  (0) 2009.08.13
발자국 / 김명수  (0) 2009.08.06
묵뫼 / 신경림  (0) 2009.08.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