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난 몰라요

샌. 2009. 8. 13. 08:38

도시에서 엄청나게 쏟아져 나오는 쓰레기들이 어디로 가는지 나는 모른다. 매일 배설하는 똥과 오줌이 어디로 흘러가 어떻게 처리되는지도 역시 모른다. 가정에서 사용하는 수많은 문명의 이기들이 어떤 원리로 작동되는지 나는 모른다. 두꺼운 설명서를 단 한 번도 읽어본 적이 없다. 그저 몇 가지 버튼을 누를 줄만 알면 된다. 아침 식탁에 오르는 고등어가 어느 바다에서 잡혀 온 것인지 물을 필요가 없다. 깔끔한 슈퍼에서 사온 식품들이 어떻게 생산되었는지 고민하지 않는다. 햇볕과 바람과 농부들의 땀에 대해서는 잊어도 좋다. 그저 값싸고 맛있으면 만족한다. 커피를 마시면서 제 3세계의 노동력 착취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지불하는 커피 대금의 얼마가 다국적기업의 수중으로 들어가는지는 고민하지 않는다. 자동차를 몰 때 배출하는 오염물질에도 눈을 감는다. 편하기 위해 차를 사서 몰고 다니는데 무슨 시비냐고 도리어 몰아세운다. 내가 쓰는 전기가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 나는 모른다. 펑펑 써대는 물의 근원이 어디인지 알려고 하지 않는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 결국 누구를 위하는 일인지 심각하게 묻지 않는다. 소위 재테크라면서 부동산이나 주식에 투자해서 내 주머니로 들어온 돈이 누구의 눈물인지에 대해서도 눈을 감는다. 이웃이 굶주리고 있어도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그런 고민을 하지 않아도 세상사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다. 도리어 더 마음 편하게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가만 생각해 보면 나는 모르는 게 아니라 알려고 하지 않을 뿐이다. 불편한 진실을 대면하기가 싫은 것이다. 모르는 척하고 속 편하게 사는 것이 현명하다는 것을 영악하게 알아채고 있는 것이다.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면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적당히 비판을 하고, 적당히 적선을 하면서, 또 적당히 선한 미소를 지으면서, 진실을 결코 행동으로 옮겨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세상의 슬픈 실상과 정면으로 마주하는 것이 나는 두려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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