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유년의 목록

샌. 2009. 7. 31. 06:41

개울 건너 물레방앗간

차가 지나갈 때마다 뽀얀 먼지를 일으키던 신작로

신작로 양편으로 도열하듯 늘어선 포플러나무

코스모스 만발한 길

보부상 아주머니 보따리 속의 예쁜 옷들

뒷마당의 땅강아지

처마 밑의 제비집

대보름날 뒷산에서의 쥐불놀이

비만 오면 잠기던 징검다리

할아버지의 흰 수염

소백산에서 몰아치던 겨울 칼바람

강에서 살던 그 많던 물고기들

보따리를 인 엄마 따라 장으로 가던 길

장터의 북적거림과 설렘

“워리”라고 부르면 방으로 뛰어 들어와 동생 똥을 먹던 똥개

수없이 날아다니던 메뚜기들

늦은 밤 동무들과 모여 놀다가 밖에 나서면 쏟아지던 별들

겨울이면 사랑방에 모여 새끼 꼬던 동네 청년들

일꾼들의 고봉밥

풍금소리

4-H 콩쿠르 노래자랑 대회

흰 연기를 날리며 달리던 증기기관차

겨울의 산토끼 사냥

콩서리로 까매진 입

골목길에서 아이들 노는 소리

저녁 어스름에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황소의 울음소리

도망가면 더 열심히 쫓아오던 물뱀

단발머리 그 소녀

출렁거리던 보리밭

아버지의 자전거

아침이면 노란 감꽃으로 덮이던 마당과 감나무

약을 먹은 뒤면 똥에 섞여 나오던 회충

놀다가 배고프면 벗겨먹던 소나무 가지

흐릿한 호롱불

책보자기와 덜거덕거리던 양철 필통

검정고무신

겨울 화로

내복 솔기 사이에서 고물거리던 이들

저녁이면 동네를 덮던 밥 짓는 연기

배급 받은 우유가루로 쪄서 만든 과자

원기소의 고소한 맛

엿장수의 가위 소리

뒷집 심술 할머니의 악 쓰는 소리

금방 낳은 달걀의 따스한 감촉

가마솥의 소죽 냄새

여름 아이스케키

또뽑기의 추억

고추 만지며 놀던 비밀스런 장난

산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하는 궁금증

세배하러 동네 모든 집을 돌아다니던 설날

달콤한 자장면 맛

선생님 집에서 과외를 받고 돌아오던 밤길

한여름의 뙤약볕과 홀딱 벗고 뛰어놀던 냇가

동무들과 놀던 긴 겨울밤

선교 나온 전도자들의 아코디언 소리

가을이면 마당에 가득 쌓인 나락가래

탈곡기 소리

여름밤 모깃불과 멍석에 누워 듣던 얘기들

밥 동냥 오던 거지들

무서워서 멀리 돌아가던 상엿집

선생님이 읽어주시던 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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