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을 다녀온 사람으로부터 한국만큼 살기 좋은 나라가 없다는 말을 흔히 듣는다. 그런 경우는 경제적으로 낙후한 나라를 다녀온 사람만이 아니라 유럽 같은 선진국에 다녀온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데 딴지를 걸 필요는 없지만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왠지 거북해지는 걸 어찌할 수 없다. 살기 좋은 나라란 과연 무엇일까라는 의문에서부터 서로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많이 다르다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이 내세우는 이유 중 하나가 한국만큼 살기에 편리한 나라가 없다는 것이다. 어딜 가나 음식점과 가게가 있으니 돈만 있으면 필요한 욕구는 당장에 해소될 수 있다. 바꾸어 말하면 돈 있는 사람에게는 가장 살기 좋은 나라라는 말과 통한다. 적어도 자주 해외여행을 다니는 사람이라면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계층일 테니 틀린 말도 아니다. 유럽의 가게들은 점심시간에도 문을 닫는데, 더구나 밤늦게까지 영업을 하는 가게는 거의 없다. 저렇게 장사해서 언제 돈을 버나 하고 도리어 한국에서 간 손님이 걱정을 할 정도다. 얼마 전 보도를 보니 프랑스에서는 일요일에도 가게 문을 열 수 있도록 법 개정을 하려는 움직임이 있다고 한다. 일요일 영업이 금지된 지 거의 100여 년이 되는 모양이다. 같은 장사를 하는데도 유럽과 한국은 이렇게 천양지차가 난다. 어느 쪽 삶의 질이 나은지는 명약관화한 일이다.
어제 신문에는 한국과 덴마크에서 일하고 있는 두 기능공의 삶을 비교한 자료가 실렸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16년째 도축공으로 일하고 있는 덴마크의 렝스 씨는 주당 노동시간이 40시간으로 오후 3시면 퇴근한다. 월수입은 약 700만 원, 땀 흘린 만큼 벌며 가족과의 삶을 즐긴다고 그는 행복해 한다. 반면에 한국의 한 배관공은 하루 12시간 노동에 시달리며 여가시간은 꿈도 꾸지 못한다. 한국 노동자들의 근로시간은 OECD 1위이고, 삶에 대한 만족도 조사를 보면 거의 꼴찌 수준이다. 요컨대 한국은 가장 많이 일하고 가장 적게 자지만, 가난한 사람은 많고 자살률은 높은 병든 사회라고 할 수 있다. 한때는 개미처럼 근면한 것이 자랑이기도 했지만 시대가 바뀐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일중독에 시달리고 있다. 청소년을 비롯한 대부분이 스트레스 환자들이다.
그러나 한국만큼 살기에 편리한 나라도 없다. 전화만 하면 논밭으로도 커피와 자장면이 배달되고, 한강 둔치에서도 오토바이에 실어오는 치킨을 먹을 수 있다. 돈만 있으면 안 되는 게 없는 나라다. 차를 타고 나갈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한국만큼 도로를 잘 만들어 놓은 나라도 없을 것이다. 교통량이 적은 산골까지도 4차선 도로가 지나가고, 산이야 망가지든 말든 두더지처럼 온 산에 구멍을 뚫어 놓았다. 제한속도가 있어서 그렇지 시속 200km까지도 달릴 수 있는 도로들이다. 문제는 이런 편리함은 반드시 반대급부를 요구한다는 것이다. 편리함에는 공짜가 없다. 일차적인 자연환경 파괴 외에도 인간에 미치는 사회적, 심리적 영향이 지대하다. 한국은 이기적 편리를 위해서 ‘불편한 행복’을 포기한 나라다.
며칠 전에 J로부터 일본 북알프스에 트레킹을 다녀온 얘기를 들었다. 산이 무척 험한데 한국과 달리 안전시설이 별로 안 되어 있더라는 것이다. 해마다 조난이나 추락사고가 자주 일어나지만 그래도 산에는 최소한도의 시설만 해 놓았더라고 말했다. 그들이 돈이 없어서 또는 인명을 경시해서 그러지는 않았으리라. 자연에는 최소한도로 손을 댄다는 어떤 원칙이 있으리라고 본다. 불편하고 위험하지만 참는 것이다. 안전에 대한 책임의 일정 부분은 등산객들의 몫이다. 작년인가 북한산에서 낙뢰로 여러 명이 사망한 사고가 있었는데 그 뒤에 북한산 봉우리마다 피뢰침이 세워졌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것도 지나친 친절의 전형이 아닌가 싶다. 또 사람이 많이 찾는다고 명산마다 케이블카를 만들려고 한다. 위험요소를 제거하고 안전시설을 만드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끔찍이도 사람과 인권을 생각해 주는 것 같지만 한국사회의 실상은 그렇지 않으니 문제다. 겉만 화려한 빛 좋은 개살구일 뿐이다.
세상에서 우리나라만큼 살기 좋은 나라가 없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나라가 되기는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살기 좋다는 것이 오직 돈과 편리함이라면, 그래서 근본을 무시하고 이기적 편리함만 추구한다면 언젠가는 정말 불편할 때가 찾아오고야 말 것이다. 당대가 아닐지라도 그 고통은 우리 후손들이 겪어야할지도 모른다. 돈만 있으면 무엇이나 할 수 있는 나라, 그들에게는 세상에서 제일 살기 좋은 나라, 그래서 너도나도 돈벌기에 혈안이 된 나라, 그래서 행복한가? 찾아오는 것은 지치고 찌든 삶밖에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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