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치마 / 문정희

샌. 2009. 7. 15. 08:53

벌써 남자들은 그곳에

심상치 않은 것이 있음을 안다

치마 속에 확실히 무언가 있기는 있다

가만두면 사라지는 달을 감추고

뜨겁게 불어오는 회오리 같은 것

대리석 두 기둥으로 받쳐 든 신전에

어쩌면 신이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은밀한 곳에서 일어나는

흥망의 비밀이 궁금하여

남자들은 평생 신전 주위를 맴도는 관광객이다

굳이 아니라면 신의 후손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들은 자꾸 족보를 확인하고

후계자를 만들려고 애를 쓴다

치마 속에 확실히 무언가 있다

여자들이 감춘 바다가 있을지도 모른다

참혹하게 아름다운 갯벌이 있고

꿈꾸는 조개들이 살고 있는 바다

한번 들어가면 영원히 죽는

허무한 동굴?

놀라운 것은

그 힘은 벗었을 때 더욱 눈부시다는 것이다

 

- 치마 / 문정희

 

생물학적으로 볼 때 남과 여, 그다사다난함의 배후에는 오로지 종족 번식 본능 외에는 없다. 몸은 그저 몸일 뿐이고, 거기에 어떤 신비적 색채를 더한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모든 것은 리비도의 발현일 뿐이다.사랑이나 예술도 마찬가지다. 어떤 면에서 우리는 채워질 수 없는 욕망에 부대끼는 가련한 짐승에 불과하다.

 

그러나 신비가 사라진 세상은 쓸쓸하고삭막하다. 사막길에서 쓰러지지 않는 것은 저 멀리 신기루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환상인 줄 알면서도지상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사랑의 꽃들이 피어난다. 불멸의 신전을 향하여, 그 신전을 지키는 사제를 향하여눈물겹게 나아가는 저 순례객들의 행진을 보라. 그 본능적인무한의 끌림만이 유일하고 확실한 것이다. 그것이 지금의 우리를 만들었고 만물을 존재하게 한다.

 

문정희 시인은 이런 류의 시를 통해서 커튼에 가려진 인간살이의 단면을 드러내 준다. 읽다 보면 고개를 끄덕이게 되고,무시하거나 외면하려 했던 것들이 조금은겸연쩍은 모습으로 드러난다. 이 시에 대하여 임보 시인이 재미있는 답시를 달았다. 서로를 긍정하는 남과 여의 궁합이 잘 맞는다. 그리고 두 시인 모두 똑 같이 종교적인 비유를 하고있다는 점도 재미있다. 신전, 성지, 참배, 경배.... 그러니 성(性)은 곧 성(聖)이 맞는가 보다.

 

그렇구나

여자들의 치마 속에 감춰진

대리석 기둥의 그 은밀한 궁전

남자들은 황홀한 밀교의 광신도들처럼

그 주변을 맴돌며 한평생 참배의 기회를 엿본다

 

여자들이 가꾸는 풍요한 갯벌의 궁전

그 남성 금지구역에 함부로 들어갔다 붙들리면

옷이 다 벗겨진 채 무릎이 꿇려

천 번의 경배를 해야만 한다

 

그러나, 그런 곤욕이 무슨 소용이리

때가 되면 목숨을 걸고 모천으로 기어오르는 연어들처럼

남자들도 그들이 태어났던 모천의 성지를 찾아

때가 되면 밤마다 깃발을 세우고 순교를 꿈꾼다

 

그러나, 여자들이여, 상상해보라

참배객이 끊긴

닫힌 신전의 문은 얼마나 적막한가!

 

그 깊고도 오묘한 문을 여는

신비의 열쇠를 남자들이 지녔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

 

보라,

그 소중한 열쇠를 혹 잃어버릴까 봐

단단히 감싸고 있는 저 탱탱한

남자들의 팬티를!

 

- 팬티 / 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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