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놀란 강 / 공광규

샌. 2009. 7. 9. 09:13

강물은 몸에

하늘과 구름과 산과 초목을 탁본하는데

모래밭은 몸에

물의 겸손을 지문으로 남기는데

새들은 지문 위에

발자국 낙관을 마구 찍어대는데

사람도 가서 발자국 낙관을

꾹꾹 찍고 돌아오는데

그래서 강은 수천 리 화선지인데

수만리 비단인데

해와 달과 구름과 새들이

얼굴을 고치며 가는 수억 장 거울인데

갈대들이 하루 종일 시를 쓰는

수십억 장 원고지인데

그걸 어쩌겠다고?

쇠붙이와 기계소리에 놀라서

파랗게 질린 강

 

- 놀란 강 / 공광규

 

그들은 독한 사람들이다. 22조라는 거금을 쏟아부어 강을 파헤치겠단다. '4대강 살리기'라고? 웃기는 소리다. 그들은 지방 토호들과 일부 건설업자들 배를 불리기 위해 강을 죽이려 한다. 자연을 개발과 투기의 대상으로만 보는 저들의 시선이 무섭다. 모든 것이 돈으로만 보이는 정말 돈 사람들이다.

 

강, 하늘, 구름, 산, 초목.... 시인의 눈에 비친 자연은 존재하는 그대로 아름답다. 강은 하늘과 구름과 새가 노는 화선지고 비단이고 거울이고 원고지다. 그중에 인간도 한 자리를 차지하지만 결코 주인이 될 수는 없다. 작은 눈 가진 사람은 그것이 잘 보이지 않는가 보다. 그런데 쇠붙이를 가져다 바닥을 긁어내고, 둑을 쌓고, 콘크리트 보를 만들어 물을 가두겠다고? 그걸 어쩌겠다고?

 

이 시는 금년도 윤동주문학상 대상 수상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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