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하고 하고 와서 첫번째로 여편네와
하던 날은 바로 그 이튿날 밤은
아니 바로 그 첫날 밤은 반시간도 넘어 했는데도
여편네가 만족하지 않는다
그년하고 하듯이 혓바닥이 떨어져나가게
물어제끼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어지간히 다부지게 해줬는데도
여편네가 만족하지 않는다
이게 아무래도 내가 저의 섹스를 槪觀하고
있는 것을 아는 모양이다
똑똑히는 몰라도 어렴풋이 느껴지는
모양이다
나는 섬찍해서 그전의 둔감한 내 자신으로
다시 돌아간다
憐憫의 순간이다 恍惚의 순간이 아니라
속아 사는 憐憫의 순간이다
나는 이것이 쏟고난 뒤에도 보통때보다
완연히 한참 더 오래 끌다가 쏟았다
한번 더 고비를 넘을 수도 있었는데 그만큼
지독하게 속이면 내가 곧 속고 만다
- 性 / 김수영
김수영 시인도 이런 시를 썼다는 사실이 신기하다. 노골적인 성적 표현만이 아니라 여성을 '그것' '이것' '여편네' 따위로 부르는 것도 불편하기 그지 없다. 그리고 시인의 부인이 이 시를 읽고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하는 괜한 걱정까지 드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신선하고 재미있게 받아들이고도 싶다. 아닌 척 또는 안 그런 척 가면을 쓰는 것보다는 이런 솔직함이 오히려 친근하고 인간적이다. 시인이 자극적인 용어를 쓰면서까지 노리는 의도도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위선적인 인간과 세상에 대한 일종의 도발로도 여겨진다.
그래도 시의 뒷맛은 인간에 대한 연민과 함께 무척 씁쓸하다. 시인은 다부지게 해 주는 것으로 미안한 마음을 갚으려 하지만 아내는 만족하지 않는다. 어떤 위장도 한계가 있다는 것은 그나마 다행한 일이다. 마음씀과 배려는 말이나 행위 이전에 저절로 공감되고 공명되는 것이다. '지독하게 속이면 내가 곧 속고 만다'고 시인은 자탄을 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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