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여든 청년 톨스토이

샌. 2009. 5. 12. 10:02

톨스토이는 소설가이기보다는 끊임없이 진리를 쫓아 살려고 한 영적 순례자였다고 할 수 있다. 톨스토이를 존경하게 되는 것은 바로 그런 점 때문이다. 파란만장한 톨스토이의 생애에서도 가장 주목 되는 두 가지는 50세가 넘어서 경험한 종교적 회심과 그 후로 겪게 되는 가족과의 갈등이 아닌가 싶다.


바울의 경우에서 보듯 위대한 종교적 회심은 극적인 경우가 많다. 톨스토이도 어느 한 순간에 가치관의 급변을 경험한다. 그것도 50이 넘은 나이에 말이다. 그 사건은 톨스토이가 모스크바의 한 빈민가를 방문했을 때 일어났다고 한다. 빈민들이 사는 모습에서 충격을 받은 톨스토이는 그런 부당한 체제를 견딜 수 없었고 자신의 전 재산을 나누어주려는 결심을 하게 된다. 심지어는 지금까지 자신의 방탕하고 무지했던 생활을 참회하며 자살을 생각하기도 했다. 이때부터 톨스토이의 새 삶이 시작되었지만 그것은 동시에 가족들과의 불화로 연결되었다.


이 회심을 계기로 톨스토이의 가치관과 삶은 반전된다. 부와 명예에 안주하는 대신 가난한 구도자적 길을 가려고 한다. 쓸모없는 지식과 이해하기 어려운 예술을 거부한다. 전에는 문화나 예술을 통하여 사회 진보를 이루려 했으나 그것이 미신이고 착각이었음을 깨닫는다. 딱딱한 종교적 교리도 거부하고 결국은 러시아 정교회로부터 파문까지 당한다. 대신에 톨스토이는 가난한 러시아 농민들의 삶에서 구원을 찾으려 한다. 소박하고 선량한 농민들에게서 인간으로서의 원형과 희망을 발견한 것이다. 또한 톨스토이는 폭력이나 혁명보다 개인의 각성을 중요시했다. 도덕적인 또는 영적 혁명을 강조한 톨스토이는 비현실적인 이상주의자에 가깝다. 어찌 보면 톨스토이는 독선적인 종교적 몽상가였다고 할 수도 있다.


대부분의 경우에 회심은 가족과의 충돌로 이어진다. 톨스토이도 예외가 아니었는데 특히 아내 소피아가 더했다. 그녀는 안락한 생활을 버리고 재산을 포기하려 하는 톨스토이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받아들이려 하지도 않았다. 어쩌면 열 명이 넘는 자식을 건사하기 위한 어머니로서는 어쩔 수 없는 행위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녀의 사고방식은 지나치게 완고했고 세속적이었다. 그녀는 사사건건 톨스토이와 대립했고 일기마저 훔쳐보며 감시한다. 견디지 못한 톨스토이는 여러 차례 가출을 하게 된다. 그러다가 결국은 아스타포보라라는 시골 역에서 쓸쓸히 죽음을 맞는다.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아내와의 대면을 바라지 않았다. 숭고한 이상을 가졌지만 자신의 가족과는 정작 화해하지도 못하고 죽었다.


젊었을 때는 쾌락과 성적 방탕에 빠졌지만 회심 뒤 톨스토이는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자신이 발견한 진리를 실천하고자 하는 끝없는 열정으로 남은 생을 살았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말년에는 가족과의 갈등으로 많이 괴로워했다. 그로서는 아내와 헤어지는 결단이 차라리 더 쉬웠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톨스토이는 끝까지 보통 사람으로서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갔다. 물론 모든 것을 아내 소피아의 책임으로만 돌릴 수 없는 측면도 있을 것이다. 톨스토이에게도 인간적 결함이 없을 수 없다. 아내의 눈에는 톨스토이가 위선자로 보였을지도 모른다.


나에게는 톨스토이의 사상보다는 그이 삶이 더욱 생생하게 다가온다. 늦은 나이의 회심과 결단, 그리고 그 길에서 부딪치는 갈등들, 이런 요소들은 크고 작건 회심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게 되는 과정인지 모른다. 톨스토이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톨스토이는 그런 고통을 회피하지 않았고 유혹에 굴복하지도 않았다. 그는 초지일관 자신의 신념을 밀고 나갔다. 비록 쓸쓸히 길 위에서 죽음을 맞을 수밖에 없었지만 그 점이 도리어 톨스토이답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누구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끊임없이 고민했던 톨스토이는 자신의 믿음을 삶으로 실천하려고 했다. 그는 가난을 바랐고, 땅을 농민에게 나눠주고 싶어 했고, 글 쓰는 일로 돈을 벌려 하지 않았다. 그는 우선 자기 스스로에게 가혹했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원하는 것과 실제 행동 사이의 괴리를 괴로워했으며 가까운 가족조차도 이해시키지 못했다. 많은 추종자를 둔 여든 살의 톨스토이가 가족과 뜻이 맞지 않아 집을 나가는 모습은 귀엽게 보이기까지 한다. 그것이 바로 죽을 때까지 자신의 이상을 따라 살려고 한 여든 청년 톨스토이의 인간적인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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