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샌. 2009. 4. 7. 09:24

이왕이면 한 번 뿐인 인생을 누구나 즐겁고 행복하게 살고 싶어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리 녹녹하지 않다. 인생은 짓궂은 장난꾸러기여서 날 그냥 평안하게 내버려두지 않는다. 이런저런 근심 걱정거리가 끊임없이 몰려온다. 그리고 운명의 여신은 기묘한 곳에다 장애물을 숨겨두고는 마치 내가 걸려 넘어지기라도 기다리는 듯하다. 돈으로, 건강으로, 직장 일로, 또는 사람들과의 불화로 인생은 그야말로 가시밭길이다. 삶이란 내 의지대로 되기보다는 운명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부분이 많다.


알고 보면 사람들이 일생을 살면서 겪는 수고는 대개가 비슷하다. 유난히 고생을 하는 사람도 있고, 무슨 복을 타고났는지 평생을 무위도식하면서 떵떵거리며 사는 사람도 있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오십보백보에 불과하다. 내가 부러워하는 것이 상대에게는 견디기 힘든 권태일 수도 있다. 대제국을 건설한 알렉산더가 아테네 거리의 거지를 부러워하기도 한다. 문제는 외부 환경이 아니라 삶을 대하는 마음이고 태도다. 그것은 즐겁고 행복한 인생은 내가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것임을 말해준다.


어떤 면에서는 고해(苦海)라고 불러도 좋을 인생을 즐겁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삶의 기술이 필요하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말은 그런 삶의 태도를 가리킨다. 즐긴다는 말을 한때 가볍게 보고 기피한 적도 있었지만, 그러나 인생을 즐기지 못한다면 결코 행복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스토아학파의 엄숙주의 대신에 ‘인생의 목적은 행복이며, 행복은 쾌락을 통해서 얻어진다.’는 에피쿠로스의 말이 요사이는 더욱 실감나게 느껴진다.


에피쿠로스학파의 쾌락은 현실세계의 아름다움과 풍부함을 긍정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이들은 삶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생명의 역동적 힘을 찬양하였다. 그들은 삶의 어두운 면을 뛰어넘고자 삶의 밝은 면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리고 자신에게 주어진 지금 이 순간을 기쁘고 즐겁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다. 영혼이나 내세의 존재는 그들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에피쿠로스학파의 쾌락은 단순히 방탕이나 감각적 향락을 즐기라는 게 아니라 인생을 즐겁게 살아가는 적극적 자세에 대해 말해주고 있다.


그런 관점에서 우리 인생에서 어쩔 수 없이 부딪쳐야 하는 일이라면 피하지 말고 즐기는 것이 건강한 삶을 위해 유익한 일이다. 왜냐하면 괴로운 인생사가 피한다고 도망갈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어차피 마주쳐야 할 일이라면 이왕이면 즐겁게 적극적으로 맞이할 필요가 있다.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인생살이가 누구에게는 소풍이 되고 누구에게는 감옥이 된다. 인생을 즐기는 삶의 자세에 대해서 몇 가지를 생각해 보았다.


첫째, 조금은 뻔뻔해지자! 그리고 남의 시선에 속박되지 말자. 뻔뻔해진다는 것은 심술꾸러기 인생에 대해서 당당하게 맞서는 것이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말자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는 그고, 나는 나다. 세상과 타인에 대해서는 일정한 간격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세상이나 사람에 대해 큰 기대를 하지 말자. 기대는 실망을 낳을 뿐이다.


둘째, 자신의 일을 ‘놀이’라고 생각하자! 세상의 무슨 일이든 생각하는 것만큼 거창하고 위대한 것은 없다. 모든 것을 사소하고 하찮은 것으로 여길 필요가 있다. 그렇게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면 내가 하는 일 역시 어린아이의 소꿉놀이 정도로 생각해 본다. 무언가를 이루어야 하고 사람들에게 잘 보여야 한다면 그것이 중압감이고 스트레스로 작용한다. 쉽게 말해 성취욕을 버릴 필요가 있다. 일 속에 고차원적인 의미가 있음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거기에 지나친 부담감을 갖지는 말자. 가능하면 가볍고 즐겁게 일을 대하자.


셋째, 남과 비교하지 말자! 불행한 사람은 못 가진 것을 사랑하고, 행복한 사람은 가진 것을 사랑한다고 한다.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자신이 우월할 때만 기쁨을 느낀다면 그는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 세상에는 나보다 훨씬 잘 나고 유능한 사람들이 수도 없이 많기 때문이다. 못 났든 잘 났든 나는 내 길을 갈 뿐이다. 그리고 진정으로 자신의 길을 가는 사람은 상대방의 길 또한 존중할 줄 안다. 자기중심주의에서 벗어나 세상에는 수많은 길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나의 길은 다른 사람의 길과 다르고, 그 다름으로 인하여 내 길은 가치 있고 아름다운 것이다.


넷째, 운명을 인정하고 받아들이자! 피할 수도 없고 맞싸울 수도 없다면 세상 흘러가는 대로 맡겨둘 필요가 있다. 세상사의 많은 부분이 우리의 걱정이나 노력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운명이란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큰 강의 거센 물결이다. 거기에 맞서려 몸부림쳐 보아야 자신의 에너지만 낭비할 뿐이다. 차라리 그 흐름에 몸을 누이고 유유자적하며 주변 경치를 구경함이 훨씬 낫지 않을까. 애써도 안 되는 일이 있음을 인정하자. 그러면 마음이 훨씬 더 편안해질 것이다.


인생을 제대로 즐길 줄 아는 것도 상당한 내공이 필요하다. 인생에 대한 치열한 고민과 번민의 밤을 지난 후에야 평화와 행복의 새벽은 밝아온다. 그렇지 않은 것은 일시적인 만족과 쾌락일 뿐이다. 그것은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삶을 즐기는 것이 그렇게 어렵기만 한 일은 아니다. 어떤 면에서는 손가락 하나를 드는 것만큼이나 쉬울 수도 있다. 어렵게 보이는 것은 우리가 그것을 가질 진정한 마음이 없기 때문인지 모른다. 인생이 주는 행복과 즐거움을 진실로 간절히 원한다면 우리가 그것을 누리지 못할 리가 없다. 문제는 엉뚱한 데서 헤매고 있는 우리의 마음 탓이 아닐까?


스스로의 삶을 즐길 줄 모르는 사람이 아름다운 세상을 약속할 수 없다.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꼭 고통과 헌신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이젠 되도록이면 인생을 가볍고 즐겁게 살고 싶다. 천성의 틀이나 규범에 매여 인생의 단맛을 놓치고 싶지는 않다. 가끔씩 힘들고 짜증나는 일이 생길 때면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경구를 떠올린다. 이왕이면 다홍치마가 아니겠는가. 세상사는 생각하기 나름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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