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2000

샌. 2009. 4. 22. 10:56

블로그에 올린 글 수가 오늘로 2,000개가 되었다. 2003년 가을에 블로그를 만들었으니 햇수로는 5년여만의 일이다. 처음에 다섯 개의 카테고리를 만들고 최소한 하루에 한 개씩의 글을 교대로 써보자고 다짐했는데 지금까지는 그 약속이 어느 정도 지켜진 셈이다. 2,000개를 그동안의 날수로 나누면 대략 하루에 한 개 정도가 된다. 특히 대부분의 글들이 다른 데서 스크랩하거나 퍼온 것이 아니라 직접 내 손으로 썼다는 사실에 보람을 느낀다. 그런 점에서 이 글들은 다른 사람에게는 하찮게 보일지 몰라도 나에게는 일상의 소중한 기록들이다.


처음 블로그를 시작했을 때는 언제 글 수가 1,000개를 넘을까 하고 조바심을 내기도 했었는데 어느새 그 두 배인 2,000개에 이르렀다. 빠른 세월을 실감하면서 작은 한 걸음 한 걸음의 무서움도 느낀다. 산을 오를 때 목표지점이 까마득해도 한 발 한 발이 모여서 결국 그곳에 이르게 된다. 뒤돌아보면 내가 걸어온 길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멀다. 지금의 내가 바로 그런 심정이다. 실제로 2,000이라는 글 수보다는 매일매일 하나씩의 글이었다는데 더 의미가 있다. 하나하나의 글들은 그날그날 내 마음의 단편들이고 분신이다.


블로그의 특징 중 하나가 온라인상에서의 사람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이다. 실제로 많은 블로거들이 의견이나 정보 교환 뿐만 아니라 고민이나 어려움을 드러내고 위로를 주고받는다. 그런데 내 경우에는 다른 블로그를 방문하고 코멘트를 다는 일이 아직도 낯설다. 글을 심사숙고하며 쓰고 읽는 편이라 남의 글에 코멘트를 다는 일이 조심스럽다. 수다 떨듯 가볍게 생각해야 하는데 그게 잘 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찾아오는 사람이나 말을 거는 사람이 적다. 그러나 어떤 때는 도리어 그게 마음 편하기도 하다.


여기가 공개된 마당이다 보니 내밀한 생각이나 정치적, 종교적 견해를 생각대로 드러내지 못하는 한계도 있다.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이 받을 불쾌감이나 상처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아마 타인이 보지 못하는 공간이라면 더 노골적인 얘기도 나왔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을 의식한다는 것이 좋은 면도 있다. 아무래도 타인의 시선에 신경 쓰게 되고, 그런 과정에서 사물이나 현상을 다른 각도에서 보려고 노력을 하게 된다. 블로그에 글쓰기는 나 스스로 좋아서 하는 개인적 기록이지만 결국은 내가 세상과 소통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또한 나 자신과의 대화라고도 할 수 있다. 어쨌든 각자 나름대로 블로그를 즐기면 된다고 생각한다.


꾸준히 글을 쓰면서 얻게 된 소득 중의 하나가 글쓰기에 익숙해졌다는 것이다. 블로그에 들린 사람들로부터 가끔 글을 잘 쓴다는 칭찬을 들을 때는 기분이 좋다. 그런 칭찬을 들을 자격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글을 쓰는 과정에서 자신을 성찰하고 세상을 진지하게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 글쓰기가 주는 제일 큰 선물이 아닌가 싶다. 글을 쓸 때마다 내가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그런 것이 나를 성장시키는 동력이 되는 것 또한 사실이다. 어쨌든 블로그에 글쓰기는 이제 규칙적인 일상이 되었다.


오늘은 2,000을 자축하는 날이다. 앞으로도 몸과 마음의 능력이 허용하는 한 블로그에 글쓰기는 계속하고 싶다. 그것은 무엇보다 나 자신을 위하는 일이다. 사는 동안 얼마의 글을 올릴 수 있을지 모르지만 하나하나의 글이 쌓여갈 때 느껴지는 만족감을 나는 즐긴다. 억지로 해야 하는 의무감이었다면 꾸준히 이만큼 오지는 못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