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S 형에게 보내는 교육 답신

샌. 2009. 4. 24. 14:20

S 형! 형이 올리는 글들 잘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 글에서는 일제고사를 거부하는 교사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했더군요. 아이들의 실력을 평가하겠다는데 왜 부정적인 눈으로 보는지 모르겠다고 말입니다. 지난 번에 만났을 때는 전교조 교사들을 돼먹지 않았다고 비난하기도 했었지요. 그때 저는 형의 보수적 교육관을 접하고 사실많이 실망했더랬습니다.시를 쓰는 형이라 뭔가 다르리라고 기대를 했던 탓이겠지요. 그러나 교장이 되기 위해 벽지근무까지 자원하며 고생했던 형이었기에 관료적인 사고를 가질 수밖에 없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모릅니다.

S 형! 일제고사에 대해서 학부모에게 가정통신문을 보냈다고 교단에서 쫓아낸 권력의 폭력에 대해서는 형은 침묵하고 있습니다.일제고사는 단순하게 시험 하나 더 보는 문제가 아니라 그런 권력의 횡포와 관계가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지금 그것에 대해서 논쟁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일제고사가 진정 우리 아이들을 위한 것인지는 묻고 싶습니다. 언젠가 지하철 경노석에 앉아 있는 분들이 큰 소리로떠드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학생들에게 시험도 못보게 하는 선생은 빨갱이들이라고 하더군요. 형이 그런 단순 논리가 아닌 줄은 알지만 사물의 이면을 형이 더 깊이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더구나 형은 시인이 아닙니까.

오늘 인터넷에 올라 있는 한 학부모의 글을 보다가 문득 형이 떠올라서 이 글을 씁니다. 아이를 가진 부모로서 교육문제를 고민하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특히 입시를 앞둔 부모들은 자식 진학에 올인하게 됩니다. 그러나 자신의 행위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고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대해서는 별로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습니다. 더 나은 세상에 대한 고뇌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저 세상의 흐름에 충실히 따라가고,또 어떻게 하면 내 자식이 경쟁에서 이길까하는 걱정이 대다수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분은 자신의 욕망을 고민하고, 아이의 마음을 살피며, 일제고사도 그런 각도에서 바라봅니다. S 형, 나는 이런 마음자리가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타락하고 난장판이 되어 버린 한국의 교육을 고치기 위해서는 근본적 자리에서 성찰하는 마음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그렇지 않고서는 모든 것이 임시방편일 뿐입니다. 썩은 세상일지라도 내 자식만 잘 되면 그만이라는 무책임한 이기주의는 세상을 더욱 험하게 만들 뿐입니다. 하긴 썩은 세상인지도 깨닫지 못하는 사람도 많으니까 할 말이 없습니다.

이분의 글 중에서 일부를 옮기면 다음과 같습니다.

' ....저와 함께 사는 아이가 지금 초등학교 4학년이거든요. 작년엔 일제고사 대상이었던 3학년이었지요. 나름 일제고사에 대한 치밀한 자료 분석과 주변 의견을 청취한 끝에 아이에게 시험공부를 따로 시키지 않는 소극적인 저항으로 일제고사를 수용하고 겨우 마음고생을 끝냈는데, 며칠 전 학교로부터 일제고사를 또 친다는 가정통신문을 받았어요. 사회적으로 그리 큰 홍역을 치렀는데도 정부 당국은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모양이에요. 사회적 합의는 물론이거니와 일제고사가 학업 성취도에 긍정적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조사 결과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강행한다니 말이에요. 저는 무엇보다 학생들과 일제고사를 주제로 대화했다는 이유만으로 교사를 교실 밖으로 쫓아내는 그 무식함에 기가 질립니다.


해묵은 얘기 하나 해드릴까요, 어쩜 이미 들었을지도. 하지만 못 들은 척 경청해주세요. 10년도 훌쩍 지난 일이에요. 전교조 해직교사와 출장을 함께 갔지요. 출장이라고는 했지만, 저는 사무실을 떠난다는 사실만으로 살짝 흥분이 되어 마치 소풍 길에 나선 초등학생 기분이었답니다. 서울역에서 기차를 탔는데, 마침 수학여행을 떠나는지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플랫폼에 가득했지요. 그리고… 저는 그 선생님의 눈에 가득했던 학생들을 향한 그리움과 그 그리움이 결국 눈물로 맺히는 걸 보았답니다. 그 선생님의 속눈물을 목격한 다음부터 저는 교단에서 떠난, 엄밀히 말하면 쫓겨난 이들을 보게 되면 한바탕 눈물바람을 일으키게 되었지요.


그런데요, 김 선생. 제가 이 대목에서 고백할 게 하나 있습니다. 교사들이 교육 현장에서 떠나야 하는 그 참담한 현실에 진저리를 치면서도 다른 한편 일제고사라는 사회적 괴물에 대해 제가 별다른 저항을 하지 못하는 무기력을 동시에 느끼고 있단 사실입니다. 저항은커녕 ‘일제고사 열공준비 족보닷컴’ 따위에 맘이 흔들린다는 것이지요. 일제고사가 아이들을 위한 정책이 아니라는 것에 백분 공감하면서도, 왜 마음속에서 ‘일제고사 예상문제집을 우리 아이에게 들려줘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치솟는 걸까요. 4학년이 되고부터 아이는 함께 놀 친구가 없다고 하소연합니다. 친구를 찾아 교실과 운동장을 배회하는 우리 아이는 언제부터인가 다른 엄마들로부터 부모의 ‘관리’를 받지 못하는 버린 자식으로 손가락질을 받게 되었습니다.


물론 저도 나름 ‘관리’를 하려고 애쓰고 있지요. 처음에는 어차피 놀 친구가 없으니까 그 시간을 유용하게 보내야 한다는 맘으로 출발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 우리 아이가 이 사회에서 도태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과 함께 적어도 서울대학까지는 몰라도 ‘인서울’ 대학엔 보내야 한다는 ‘욕망’이 투영되었다는 것을 숨길 수 없습니다. 제가 아이를 어르고 달래며 영어 학원을 보내는 마음이 그저 옆집 엄마에게 휘둘렸다는 식의 사회 분위기에 편승한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이지요. 아이는 스스로 불안을 느끼지도, 욕망하지도 않는데, 저의 불안이 아이의 불안을 낳고, 저의 욕망이 아이의 욕망으로 전이되고 말아, 결국 아이는 ‘학원은 지옥에나 보내버려’라는 악담을 퍼붓고 되고……. 왜 이리 되어버렸을까요?


어찌해야 하나 아직 갈피를 잡지 못했지만, 조금씩 움터져 나오는 새로운 기운을 접하며 용기를 내야겠지요. 언제나 그렇듯 힘내라고 격려해주실 거죠? 언젠가 김 선생이 현재 한국의 교육문제 해법은 제도의 문제가 아닐지도 모르겠다고 했던 말이 자꾸 생각나네요. 어쩜 학부모들에게 필요한 것은 선진 교육 시스템보다는 ‘용기’가 아닐까 싶어요. 교육 주체들이 자신의 욕망을 솔직히 대면하고, 그 욕망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그 성찰 끝에 용기 있게 자신의 길을 가는 것. 제도를 진정으로 ‘따’시킬 수도 있는 그 길. 그게 참교육을 실천하는 교사도 지키고, 우리 아이도 지키는 해법 아닐까요?....'

S 형! 이분의글 중에 제도를 '따' 시킬 수 있다는 길이 눈길을 끕니다. 그 길이란 교육 주체들이 자신의 욕망을 솔직히 대면하고, 그 욕망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그 성찰 끝에 용기 있게 자신의 길을 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우리 마음 안에서 혁명이 일어나야 한다는 뜻이죠. 너무 천진한 생각인가요? 개혁이나 혁명으로 세상을 바꾸겠다는 오만이 도리어 더 순진한 생각인지도 모릅니다. 세상의 변화가 전적으로 마음의 문제라고 할 수는 없지만 사람 마음 바탕의 변화 없이 세상이 바뀌어지리라고는 보이지 않습니다.

비록 꿈일지 모르지만 어느 한 사람에게서 시작된 변화와 행동이 연쇄반응을 일으켜 대폭발이 일어나는 상상을 합니다. 사랑과 협동과 조화의 핵폭탄이 터지는 것이지요. 그렇게 해서 아름다운 세상이 찾아온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현실이 워낙 답답하니 별난 상상도 다 해봅니다. S 형, 사람들은 제도 탓을 하지만 결코 제도만의 문제는 아닐 거예요. 우리들 안에 내재된 욕망과 그 욕망을 부추기는 체제가 복합적으로 만들어내는 반생명적인 문화 속에서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만났던 그날, 형은 자신의 교단 경험을 예로 들며 지금의 현실을 개탄했습니다. 그것이 단지 나이 많은 기성세대의 버르장머리 없다는 넋두리가 아니었기를 바랍니다. 또한 현실을 비판하기는 쉽지만우리 자신이 먼저 변화의 주체가 되기는 어렵습니다. 그것은 나를 희생해야 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S 형, 우리는 사실 너무나 약해요. 자신이 믿는 바를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용기가 없습니다. 그저 망설이고 헤매일 뿐입니다.

S 형! 중요한 것은 현실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성찰인 것 같습니다.그 뒤에 용기 있게 자신의 길을 가는 것은 또 다른 몫이라고 생각해요. 형과 나는 현실을 보는 눈이 다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차이는 어쩌면 사소한 것일 수도 있어요. 중요한 것은 자신과 세상에 대한 치열한 고민과 성찰이 아닐까요.그 뒤에 용기 있게 자신의 길을 갈 수 있다면, 그래서 이 천하고 악한 제도를 진정으로 '따' 시킬 수 있다면.... 그런 상상만으로도 난 지금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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