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자와 자루를 열고 궤짝을 뒤지는 도둑을
막기 위해서는
반드시 노끈으로 단단히 묶고
튼튼한 빗장이나 자물쇠로 잠가두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것이 이른바 세상의 지혜라는 것이다.
그러나 큰 도둑의 경우는
궤짝을 지고, 상자를 들고, 자루를 메고 달아나면서
오히려 노끈이나 자물쇠가 튼튼하지 않을까 걱정한다.
그런즉 지난날 이른바 지혜 있다는 자들은
큰 도둑을 위해 쌓아두는 자들이 아니고 무엇인가?
將爲거협探裏發櫃之盜
而爲守備
則必攝緘등
固경휼
此世俗之所謂知也
然而巨盜至
則負櫃揭협擔裏而趨
唯恐緘등경휼之不固也
然則鄕之所謂知者
不乃爲大盜積者也
- 거협 1
'큰 도둑'[大盜]이란 나라를 훔치는 자나 무리들이다. 아무리 지혜를써서 좋은 정치를 베풀려고 해도 큰 도둑의 칼부림 한 번에 모든 것이 무너지고 만다. 성인의 법은 도리어 큰 도둑만 이롭게 해 준다. 세상 역사가 그걸 증명하고 있다. 장자는 유가를 비롯한 위정 철학을 도둑을 위해 재물을 쌓아두는 것과 같다고 일갈한다.
'큰 도둑'의 의미는 다르게 해석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사악한 제도 아래서는 아무리 개인이 선하게 살려고 해도 제도의 이용물만 될 뿐이다. 번영과 행복을 약속하는 이면에는 착취와 속박의 굴레가 숨겨져 있는지도 모른다. 장자의 말처럼 겉으로 지혜롭게 잘 사는 것 같이 보이는 것이 근본적 측면에서는 허망한 일일 수도 있다. 사물의 근본과 뿌리를 볼 수 있는 '큰 지혜'가 필요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