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워낭소리

샌. 2009. 2. 5. 08:45



감동적인 영화를 한 편 보았다. 이충렬 감독의 다큐멘타리 영화인 '워낭소리'다. 워낭은 소의 목에 매다는 방울인데, 맑게 딸랑거리는 워낭소리는 주술처럼 우리를 유년의 고향으로 안내해 준다.

 

경북 봉화에 사시는 여든 살의 최 할아버지에게는 30 년을 함께 살아온 늙은 소가 있다. 소의 수명은 보통 15 년이라는데 이 소는 나이가 40 살이나 되었다. 할아버지와 소는 사람과 가축 이상의 끈끈한 정으로 맺어져 있다. 할아버지는 소를 위해서 농약도 치지 않고 농사를 짓는데 할머니보다 소를 더 챙긴다고 할머니로부터 늘 불평을 듣는다. 그리고 소는 다리가 불편한 할아버지의 수족이 되고 농기구가 되어 온 몸을 바쳐 헌신한다. 소에게도 할아버지에게도 삶은 힘들고 고통스럽기만 하다. 잘 걷지도 못하는 소는 죽기 직전까지 땔감을 나르는 일을 하고, 할아버지 역시 아픈 몸을 이끌고 매일 들로 나간다. 둘에게서 일은 숙명이며 그것이 또한 둘을 하나로 만드는 매개가 된다. 영화는 사람과 소의 신난한 삶과 교감을 따스하고 서정적으로 그려낸다.

 

영화는 소의 눈을 자주 클로즈업 해서 보여준다. 말을 못하는 소에게서 슬픈 눈 만큼 직설적인 메시지도 없을 것이다. 할아버지가 소를 거두기 힘들어 팔려고 결정했을 때 소가 눈물을 흘리는 장면에는 가슴이 먹먹해졌다. 영화에는 그런 감동적인 장면들이 여럿 있다. 소가 죽기 직전에 할아버지는 마침내 꼬뚜레를 풀어준다. 소는 죽어서야 자신을 옭매던 고삐에서 해방되는 것이다. 일소로 기르기 위해서는 소를 길들여야 한다. 영화에도 나오지만 천방지축 날뛰는 송아지를 보면 그것은 소의 본성에 반하는 일이다. 그러나 일소는 다시 그것이 제 2의 천성이 되어 묵묵히 살아간다. 사람 또한 거기서 크게 다르지 않다고 여겨진다. 눈에 보이지 않아서 그렇지 우리들 역시 길들여지고 고삐에 매여있지는 않은지, 영화를 보는 내내 삶에 대한 연민의 감정으로 마음이 아팠다.

 

무거워질 수밖에 없는 영화에 균형을 맞춰주는 것은 할머니의 신세타령이다. "아이고, 내 팔자야!"하며 할아버지와 소를 원망하는 대사는 겉표현과는 달리 둘에 대한 깊은 정이 담겨 있다. 두 분의 모습은 지금 농촌에 살고 계신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모습이다. 나 역시 고향에 계신 어머니가 자주 오버랩되었다.

 

영화를 보면서 몇 번인가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훔치지 않을 수 없었다. 관객 분위기도 아주 숙연했다. 영화는 시적이고 서정적인 영상미도 좋았으며 아름다운 자연 풍경과 팍팍한 삶이 어우러져 감동적인 작품으로 되었다. 부산국제영화제나 선댄스영화제에서 수상을 했다는 사실이 충분히 수긍이 가는 영화다. 보지 못한 분들에게 적극 추천하고 싶다.

 













이것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다. 소는 떠났고 텅 빈 밭에 할아버지만 홀로 남았다. 병약하신 할아버지도 오래 사시지는 못 할 것이다. 소가 죽으면 따라서 죽을 거라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다.소도 할아버지도 떠난 이 땅에는 다시는 이런 아름다운 동화가 나오지는 못 할 것 같다.

 



옛 시절은 지나갔다. 그 시절은 가난했으나 사람 사이의 깊은 정이 있었고, 사람과 동물이 한 가족처럼 지냈다. 지금 우리가 물질적으로는 풍요롭지만 뭔가 가슴 한 구석이 허전한 것은 그런 삶의 본질을 잃어가고 있기 때문인지 모른다.

 

그런 시절을 그린 시 한 편이 있다.

 

황소 한 마리가 외양간을 꽉 채우고 엎드려 있는 것만큼 마음 든든한 광경도 없을 겁니다.


그날 밤 따라 검둥이란 놈이 유난히도 짖어댔습니다. 한 십년 먹인 수캐였는데 매우 영리해서 사람의 말을 잘 알아들었지요. 한가지, 이 검둥이란 놈에겐 기이한 점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놈의 잠자리였는데요, 마루 밑에 마련해준 제 잠자리는 거들떠도 아니 보고 늘 외양간에 가서 잤습니다. 엎딘 소의 옆구리께에 턱하니 기대어 짚북데기에 코를 박고 잤는데요 그날은 동네 암캐라도 쫓다온 것인지 밤 이슥한 시간에 그토록 떠나갈 듯 짖어댄 것입니다. 아버지가 야, 이놈 검둥아 그만 짖어라, 누운 채 몇 번 나무랐지만 막무가내였습니다. 아버지의 음성을 듣자 개는 오히려 더 극악스레 짖어댔습니다. 개 짖는 낌새가 이거 심상찮다 싶었느지 아버지는 대충 걸쳐 입고 방문 벌컥 열고 뛰쳐나갔습니다. 소가 없어진 것입니다.


텅 빈 외양간 앞에 텅 빈 아버지가 망연히 서 있었습니다. 계속 아버지를 뒤흔들기라도 하듯 마구 짖어대던 검둥이란 놈이 땅에다가 코를 대며 살짝 밖으로 댑다 달려나갔습니다. 금세 아버지 앞으로 되달려오면서 미친 듯 짖어대는 거였지요. 그러기를 수 차례, 이윽고 아버지가, 알았다, 가자, 하면서 자전거를 꺼내 탔습니다. 검둥이란 놈이 기다렸다는 듯이 휭하니 앞서 달려 나갔습니다.


소를 찾았습니다. 아버지의 이야기는 이러하였습니다. 검둥이란 놈은 동구 밖을 벗어나자 그때부터 짖지도 않고 가끔 땅에다 코를 대거나 아버지를 기다리거나 하면서 내쳐 적당히 달리기만 했다고 합니다. 달이 기울고 어느 마을 첫닭이 울 무렵이었을까요, 우리 사는 곳에서 오십리나 떨어진 왜관 인도교에 이르러 마침내 도둑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아버지의 고함소리에, 다시 개 짖는 소리에, 혼비백산한 도둑은 그만 소의 고삐를 놓고 걸음아 날 살려라 줄행랑을 쳤고요. 물론 검둥이란 놈이 한 입에 집어삼킬 듯 도둑의 꽁무니를 향해 돌진했지요. 그러나 그때 우리의 소가, 크고 환하게 몸을 돌렸기 때문이었을까요? 아서라 됐다, 일평생 불같았던 아버지, 캄캄했던 아버지, 들끓었던 아버지가 일순 검둥이란 놈을 말렸다고 합니다.


동녘 일출을 후광으로 아버지와 소, 검둥이란 놈이 한데 어우러져 돌아오던 그 아침의 붉새의 들녘을 기억합니다.

 

- 심우도(尋牛圖) / 문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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