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나침반

장자[52]

샌. 2008. 12. 13. 21:54

그런 일이 있은 후

열자는 스스로 학문의 시초도 없음을 알고

집으로 돌아갔다.

삼 년을 두문불출하며

아내를 위해 밥을 짓고 돼지를 사람처럼 먹였다.

일을 함에 친척과 더불어 하지도 않고

인위의 허식도 없어진 소박한 자연으로 돌아갔다.

대지처럼 형체를 독립시켜

분란을 묻어버리고

한결같이 이로써 생을 마쳤다.

 

然後

列子自以爲未始學

而歸

三年不出

爲其妻찬 食豚如食人

於事無與親

彫琢復朴

塊然 獨以其形立

紛而封哉

一以始終

 

- 應帝王 3

 

열자(列子)는 지식과 학문의 길을 통해 도(道)에 이르려고 했다. 그러나 스승으로부터 학문 이전의 경지를 접한 뒤지적 배움의 길을 버리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삼 년을 두문불출하며 아내를 위해 밥을 짓고 돼지를 사람처럼 먹였다. 무기(無己)의 사람, 철저히 비워지고 낮아진 사람이 된 것이다. 체면이나 관습에서 완전히 해방됨을 실천했다고 할 수 있다. 또는 의지적인 그런 삶을 통해서지극한 경지에 이르게 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이 내용은 내가 장자를 처음 접했을 때 굉장히 감명을 받았던 부분이다. 지적인 분별심으로 가득차 있던 나에게 어떤 것이 참배움의 길인지를 열자가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공감을 하면서 나도 그렇게 살려고 시도도 해 봤지만 그러나 열자처럼 단 하루도 살지 못했다. 가치를 따지고 호오를 분별하는 이분법적 사고 방식에서 벗어나기는 말처럼 쉽지 않았다. 노력만으로 될 일이 아니었다.

 

여기서 중요한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은 '돌아갔다'[歸]는 단어가 아닌가 한다. 그것은종교적 회심과 비슷한 결단이며 깨우침이다. 성경에 나오는 돌아온 탕자 비유를 생각해 볼 수도 있다.결국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섬으로써 탕자는 평화를 얻을 수 있었다.여기서 열자가 집으로 돌아갔다는 의미와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본다. 열자가 돌아선 것은이분법적 세계관에서 벗어났다는 뜻이기도 하다. 남자와 여자를 가르고, 인간과 동물을 나누고, 이웃과 찬척을 구분하고, 좋은 일과 싫은 일을 구별하여 한 쪽에 집착하는 편견에서 벗어났다는 뜻이다.

 

열자가 새로운 배움에 길에 들어서서 한 행위는 아내를 위해 밥을 짓고 돼지를 사람처럼 먹인 것이었다. 삼 년을 두문불출하고 그렇게 했다고 장자에는 적혀 있다. 그것은 자신을 낮추고 버리는 수양의 한 과정이었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그리고 열자는 거의 완전한 무기(無己)와 무심(無心)의 사람이 되었다. 장자 첫 부분인 소요유 편에 보면 열자는 바람을 타고 날아다니는 사람으로 묘사되고 있다. 의지할 바람이 있어야 되는 점에서 완전한 지인(至人)의 경지에는 못 미친다고 서술되어 있지만 열자의 돌아섬은 하나의 상징적인 모델이 되기에 충분하다고 본다. 거듭난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구체적이고 분명하게 설명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열자는 한결같이 그렇게 살았다는 것이다. 그것은 근본적이며 심층적인 변화가 열자에게 일어났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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