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히 밝은 임금의 다스림을 묻습니다."
노담이 답했다.
"밝은 왕의 다스림은
공로가 천하를 덮어도 자기 공로가 아니라 하고
만물에 교화를 베풀지만 백성들은 의지하지 않는다.
이름을 드러내지 않으니 사물을 스스로 기뻐하게 한다.
측량할 수 없는 곳에 서서
무위에서 노닐기 때문이다."
敢問明王之治
老聃曰
明王之治
功蓋天下 而似不自己
化貸萬物 而民不恃
有莫擧名 使物自喜
立乎不測
而遊於無有者也
- 應帝王 2
양자거(陽子居)의 질문에 대한 노자의 대답이다. 역시 노자 답게 이상적인 통치 행위로 '무위의 다스림'[無爲之治]을 말하고 있다. 노자에 따르면 금지나 규칙을 만들면 만들수록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해지고, 무기를 지니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폭력배는 더 날뛰게 되고, 새로운 지식이 생기면 생길수록 사람들은 더 바빠지게 되고, 법규가 많으면 많을수록 부정부패는 더 늘어나게 된다. 무엇을 이루려는 인위적인 의도나 욕망은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무위의 다스림이란 이 앞 부분에 나오는 장자의 다음과 같은 말에도 잘 나타나 있다.
"네가 마음을 물처럼 담박한 데서 노닐게 하고
기를 사막처럼 혼돈한 속에서 합하고
사물을 자연에 따르게 하여
사사로움을 용납하지 않으면
천하는 다스려지는 것이다."
汝遊心於淡 合氣於漠 順物自然 而無容私焉 而天下治矣
그리고 도덕경 17 장에도 최고의 리더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리더가 있대?"
"어, 리더가 있긴 있는 것 같아."
존재하나 그 움직임은 드러나지 않는 리더가
최고의 리더라는군요.
"와, 우리 리더는 몸짓 하나, 표정 하나가 너무 멋져."
사람들이 흠모하며 칭찬하는 리더가
그 다음 순위의 리더라는군요.
"아이고 무서워, 호랑이보다 더 무섭네, 우리 리더는."
사람들이 벌벌 떨며 무서워하는 리더가
세 번째 리더라는군요.
"뭐, 저 딴 게 리더야. 세상 리더 다 죽었군."
사람들이 콧방귀 뀌며 무시하는 리더가
제일 형편없는 리더라는군요.
오늘날의 정치가와 아주 흡사하지요.
아랫사람을 믿지 못하면
규칙만, 말만 넘쳐나
괜한 허세만 부리게 된답니다.
최고의 리더는
다스림이 끝났으면
조용히 물러날 줄 안답니다.
그러면
아랫사람들은 그 행복한 세상을 가리켜 이렇게 말할 테지요.
"우리가, 우리 스스로 일궈 낸 거야."
이것이 바로 도(道)에 바탕을 둔 정치랍니다.
그리고
이것은
회사나 가정이나 매한가지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