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나침반

장자[53]

샌. 2008. 12. 20. 09:40

명예의 우상이 되지 말고, 꾀함의 주인이 되지 말며,

섬기는 관리가 되지 말며, 지혜의 주인이 되지 말라.

무궁을 체현하고 내가 없는 경지에 노닐라.

하늘에서 받은 본성을 다할 뿐,

앎을 나타내지 말고, 비어 있을 뿐이다.

지인의 마음씀은 거울과 같아서

보내지도 않고 맞이하지도 않는다.

다만 변화에 응하되 마음에 두지 않는다.

그러므로 능히 외물(外物)을 극복하고 상하지 않는 것이다.

 

無爲名尸 無爲謨府

無爲事任 無爲知主

體盡無窮 而遊無朕

盡其所受於天

而無見得 亦虛而已

至人之用心若鏡

不將不迎

應而不藏

故能勝物而不傷

 

- 應帝王 4

 

도가에서 수양의 극치는 자기 자신마저 잊어버리는 망아(忘我)에 이르는 것이다. 여기서도 '내가 없는 경지에 노닐라'거나 '비어 있을 뿐이다'라는 말이 그것을 나타낸다. 그런 상태에서는 사물에 대한 좋고 싫음의 구별이 없고, 일체가 차별이 없이 평등하다. 죽음과 삶도 하나이며 다르지 않다.

 

장자에 따르면 삶에서 우리가 받는 고통과 불행, 또는 상처를 받는 것은 다 내 마음이 만들어낸 것이다. 사랑하고, 미워하고, 기대하고, 집착하는 모든 마음씀이 내[我]가있음으로써 생기는 것이다. 내가 없다면, 그래서 외물에 대해 어떤 요구나 편견을 가지지 않는다면 도시 상처를 입을 이유가 없다. 장자는 밖에서 원인을 찾으려 하지 말고 먼저 자신을 살피라고 한다. 상처는 상대방이 준 것이 아니라 자신이 스스로 만든 것이다. 장자 뒷편에 나오는'빈 배'[虛舟]의 비유는 그런 점에서 매우 정확하고 아름답다.

 

여기서 장자는 지인(至人)의 마음씀을 거울에 비유했다. '지인의 마음씀은 거울과 같아서 보내지도 않고 맞이하지도 않는다.' 거울이란 사물을 아무 가감없이 그대로 비추기만 할뿐이다. 자신 앞에 나타나는삼라만상을 보기 싫다고 거절하지도 않고 마음에 든다고 환영하지도 않는다. 자신에게 생기는 변화를 그저 초연하게 받아들인다. 또한 거울은 빛을 반사한다. 빛이 거울에 부딪치지만 거울에는 거의 영향을 주지 못한다. 그것처럼 지인의 마음은 외적 현상에 대해 아무 영향을 받지 않는다. 모든 사물이나 현상은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고 스쳐지나갈 뿐이다. 한 때 아이들 사이에 '반사'라는 말이 유행했던 적이 있었다. 상대방이 욕을 하면 그 욕이 욕을 한 상대방에게 그대로 돌아간다는 뜻이다. 아이들이 장난으로 한 놀이였지만 상당히 의미 있는 뜻을 품고 있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이런 경지에 누구나 이를 수 없다는 데 있다. 나를 완전히 비운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현실의 삶은 끊임없는 욕망과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인간의 본질은 철저히 자기중심적이고 그 시야는 편협하다. 인간의 한계가 가지는 벽은 높다. 비록 지인의 경지에는 다다르지 못한다 할지라도자신을 초극해 나가려는 의지와 과정이 중요한 것이 아닐까. 이 험한 세상을 그나마 덜 피곤하게 살아내자면 장자가 주는 충고는계속 유용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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