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나침반

장자[48]

샌. 2008. 11. 16. 09:38

안회가 공자에게 물었다.

"맹손재는 자기 부모가 죽었을 때

곡을 하면서 눈물을 흘리지 않았고

마음으로 슬퍼하지도 않았고

상중에 애통해하지도 않았습니다.

이처럼 세 가지 예의조차 무시했는데

상을 잘 치렀다고 합니다.

노나라에서는 정말 실(實)이 없어도

명성을 얻는 것인지요?

저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공자는 답했다.

"맹손씨는 상례를 잘 했다.

뿐만 아니라 지자(智者)에 가까웠다."

 

顔回問仲尼 曰

孟孫才 其母死

哭泣不涕

中心不戚

居喪不哀

無是三者

以善處喪

蓋魯國 固有無其實

而得名者乎

回一怪之

仲尼曰

夫孟孫氏 盡之矣

進於知矣

 

- 大宗師 10

 

여기서는 형식과 본질의 문제가 대두된다. 형식은 본질을 담는 그릇이지만 자칫하면 본질을 망각하고 형식에만 집착하기도 한다. 주객이 전도되는 것이다. 인(仁)이니 의(義)니 예(禮)니 하는 것들도 마찬가지다. 그것들은 본질에 접근하는 수단이 되어야지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에를 차린다는것은 예를 넘어서는 경지에 이르고자 함이다.

 

안회에게 있어 맹손재의 태도는 이해불가일 수 있다. 도(道)에 이른 사람의 행동은 세속적 기준으로는 비상식적이고 파격적으로 보인다. 어떤 경우는 광기로 나타난다. 상식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과 도의 중심에 서 있는사람과는이렇듯 판이하게 다르다. 그런 사람에게 관습이나 예절은 군더더기일 뿐이다. 죽음 역시 여기에서 저기로 자리를 옮기는 것 뿐인데 슬퍼하거나 두려워할 여지가 없다. 지인(至人)이 다른 사람의 눈을 의식해 상례를 따르느라 일부러 애통해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지인이 상례 자체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세상 속에서 어울려 살면서 도의 중심을잃지 않는 것이 지인의 태도다. 화이부동(和而不同), 화광동진(和光同塵)의 세계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장자가 공자의 입을 빌려 자신의 뜻을 밝히고 있는 점이다. 공자는 도가에서 비판하는 중심에 있는 인물이다. 장자 후대에 씌어졌다고 여겨지는 편들에서는 공자는 주로 조롱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여기서 장자는 공자학파에 대한 비판과 공자 개인을 구별하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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