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풍경'은 김형경의 심리 여행 에세이집이다. 저자는 수 년간 정신분석을 받은 뒤, 자신을 찾기 위해집을 팔고 해외여행을 떠났다. 이 책은 여행에서 만난 풍경이나 사람들 얘기면서 자신의 내면을 성찰한 기록이다.
이 책을 들면 저자의 여행 얘기를 들으면서 심리학 용어나 심리학의 기초 개념들을 쉽게 익힐 수 있다.사람들의 마음이나 그런 행동을 하는 배경에 대해 솔직하고 객관적인 분석을 할 때는 거북하기도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고개가 끄덕여지는 부분이 많다. 저자는 특히 유년 시절에 어머니와의 관계를 통해 형성되는 인성을 중요시하고, 그 시절의 억압이나 왜곡된 콤플렉스가 무의식의 세계를 만든다고 본다. 그런 관점에서 인간의 감정과 의식을 해석하는데 프로이드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다.
첵은 3 장으로 되어 있는데 우리가 생득적으로 갖게 되는 감정들과 그 감정을 다루는 방법, 그리고 살면서 성취해야 할 덕목들을 다룬다.여기에 나오는 27 가지 개념들과 정의를일별하는 것만으로도 인간에 대해 많은 공부가 될 것 같다.
나는 개인적으로 저자가 정신분석을 받으면서 '야하고 뻔뻔하게' 살아가라는 충고를 받았다는데에 공감을 했다.유아적 환상을 벗고 세상과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면서삶의 갈등이 해소될 수 있었다는것이다. 그것은 나의 경우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 말이었다. 책을 읽는 내내 자아 실현을 향한 저자의 용기가부러웠다.
아래에 책 내용의 일부를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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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식 : 우리 생의 은밀한 비밀창고
우리 삶의 중요하면서도 어처구니없는 비밀 한 가지는 우리 대부분이 세 살까지 형성된 인성을 중심으로, 여섯 살까지 배운 관계 맺기 방식을 토대로 살아간다는 것이다. 정신분석가들은 인간 정신이 생후 3년에 이르기까지 60%, 여섯 살까지 95% 형성된다고 한다.
어린 시절이 문제가 되는 사람이 성인이 되어 겪는 대표적인 어려움 중에는 성을 포함한 사랑의 문제, 돈을 포함한 현실적 삶을 관리하는 능력, 생을 활기 있고 즐겁게 받아들이는 놀이의 문제가 있다고 한다. 사실 그것은 생의 전반에 걸쳐 가장 중요하고 핵심인 문제일 것이다.
사랑 : 모든 심리적 문제의 원인이자 해결책
생의 모든 문제가 사랑에서 비롯된다고 할 때 그 중 가장 중요하고 모든 문제의 핵심이 되는 사랑은 아기 때 엄마와 나누는 최초의 사랑이다. 아기에게 엄마는 최초로 경험하는 안락한 즐거움, 쾌락, 행복감이 근원이다. 엄마와의 안락한 공생 체험은 사랑의 원형으로 자리잡아 성인이 된 후의 사랑의 방식을 결정짓는다.
우리가 생에서 만나는 모든 문제가 사랑에서 비롯되는 이유는 기대했던 사랑이 결핍되었을 때의 감정과 관계있기 때문이다. 분노, 우울, 불안, 공포, 중독, 질투, 시기심..... 그 치명적인 감정들을 뒤집어보면 ‘사랑의 부재’라는 문제가 존재한다. 거리를 방황하는 청소년들, 폭주족들, 거식증이나 폭식증 환자들의 진정한 욕망도 사랑해달라는 외침이다. 도박, 알코올, 마약, 일중독에 빠지는 사람들의 진정한 욕망도 사랑받고 싶은 욕망이다.
사랑할 때 내면에서 소용돌이치면서 올라오는 부정적인 감정들을 정면으로 끌어안을 수만 있다면, 아주 힘들고 고통스러울지라도 그 감정을 넘어서서 계속 사랑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무의식을 의식의 차원으로 통합시키는 일이 될 것이다. 사랑이 한 사람을 아름답게, 자신감 있게, 성숙하게 만드는 이유 역시 그 어려움을 이겨낸 성과일 것이다. 사랑만 제대로 해낼 수 있다면 인간 정신의 많은 문제들이 해결된다고 한다.
대상 선택 : 타인을 중요한 존재로 생각하게 되는 과정
사랑이란 세상에 존재하는 무수히 많은 사람 중에서 어떤 한 사람을 특별하고 소중한 존재로 인식하게 되는 과정이라고 한다. 전문 용어로는 ‘대상 선택’이라고 하며, 프로이드는 대상 선택의 기준을 의존적 대상 선택과 자기애적 대상 선택, 크게 두 가지로 나눈다. 전자는 생존에 필요한 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후자는 미화된 자기 이미지를 투사할 수 있는 사람을 사랑의 대상으로 삼는다.
사랑이 의존성이거나 자기애의 투사거나 신경증일 뿐일 때, 어떤 대상 선택도 병리적 관계 맺기 뿐일 때, 그렇다면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가. 여기에 병리적이거나 중독적 사랑 대신 친밀성을 근간으로 하는 ‘합류적 사랑’이라는 개념이 있다. 합류적 사랑이란 상대방에게 사로잡히는 대신 자아 발전을 최우선으로 하고, 즉각적인 희열을 욕망하기보다는 단계적으로 발전하는 관계를 지향한다. 헌신을 요구하며 상대방을 압박하기보다는 선택의 자유를 존중하며, 관계 내에서 지배하고 지배당하기보다는 상호성을 이루는 방식이다. 무엇보다도 상대방과 하나가 되려는 융합의 욕망(그 욕망이야말로 엄마와의 행복한 공생관계를 꿈꾸는 유아기의 환상이다)을 벗고 상대방의 안녕과 성장에 관심을 쏟으며 상대방을 그냥 내버려두는 초연함이 필요하다.
분노 : 대상 상실의 감정, 혹은 돌아오지 않은 사랑
분노는 전형적으로 사랑의 뒷면이어서 사랑하는 대상을 잃었거나 애착의 감정을 박탈당했을 때 느끼는 감정이다. 우리는 누구나 내면에 억압된 분노를 가지고 있으며 그것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삶의 질이 달라진다.
우리는 누구나 태생적으로 나르시시스트의 요소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저마다 자신이 소중하고 특별하고 선하고 정당한 사람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그러 자기 이미지가 침해당했을 때 느끼는 분노를 ‘자기애적 분노’라고 한다.
분노의 본질에 대해 간결하고 명쾌한 정의가 하나 있다. “5분 이상 화가 난다면 그것은 나의 문제다.”
우울 : 정신의 착오, 혹은 마음의 요술 부리기
프로이드 학파 정신분석가들은 분노가 억압되어 제대로 표출되지 못할 때 우울증이 생긴다고 보았다. 외부로 표출되지 못한 감정들이 내면으로 돌려져 자기 파괴, 우울증, 자살 등의 형태로 나타나게 된다. 그 뒤 프로이드 다음 세대 정신분석가들은 우울증이 상처받고 불완전하며 텅 빈 원초적 자아의 신호라고 보았다. 인간은 그 태생에서부터 어떤 근본적인 결함, 선천적인 결여로 인해 고통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불안 : 사랑하는 대상을 잃을까봐 두려워하는 마음
불안 장애는 실제로 존재하는 위험에 대한 반응이 아니라 위험에 대한 환상으로 인해 몸과 마음이 무력하게 느껴지는 상태이다. 그 원인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위험에 대한 과잉반응이며 유아기에 형성된 정서라는 것을 알아차리는 데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생이란 본디부터 그렇게 유동적이고 불안정하고 소란스럽고 깨어지기 쉬운 것이라는 것을. 본래 그런 삶을 유독 불안정하게 느꼈던 것은 내면의 불안함 때문이었으며, 그것 때문에 정상적인 삶조차 불안하게 받아들였다는 것을.
공포 : 분노가 가면을 쓰고 다른 대상에게 옮겨진 것
정상적인 공포심은 낯설고 위험한 환경에서 느끼는 정상적인 반응이다. 위험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느끼는, 삶의 장애가 되는 비정상적인 공포는 대체로 내면에 억압된 분노의 감정과 관계있다.
의존 : 심리적 안정을 얻기 위해 사용하는 대상
인간은 태생에서부터 의존적이기 때문에 늘 의존할 누군가를 필요로 한다. 건강한 의존은 서로 돕고 교류하는 유익한 관계지만 병리적 의존은 서로의 발달을 가로막는다. 우리는 자주 의존성을 우정이나 사랑과 착각하기도 한다.
중독 : 의존성이 심화 극단화된 상태
대상에 대한 의존이 너무 심해 그것 없이는 생활이 유지되지 않을 때 그 상태를 중독이라고 한다. 삶의 고통으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몰입하는 모든 기제가 중독의 대상이 되며, 중독의 심리적 근원에는 유아기의 결핍이 자리하고 있다.
질투 : 사랑받는 자로서의 자신감 없음
프로이드적 정신분석학에서 질투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관계있다. 반대 성의 부모를 욕망하면서 동성의 부모에게 느끼는 감정, 그것이 질투이다. 진화 심리학자들은 질투심이 유전자를 후대에 남기기 위해 선택하는 자연적인 심리기능이라고 설명한다.
시기심 : 타인이 가진 것을 파괴하고 싶은 욕망
시기심은 행복, 성공, 명성 등 가치 있는 것을 누리는 사람에 대해 불쾌감과 악의를 느끼는 감정이다. 그 심리적 배경에는 ‘상대방이 가진 것이 내게 결핍되어 있다’는 느낌이 있으며 자신과 무관한 사람을 향해서도 표출된다.
분열 : 세상을 반으로 축소시키는 태도
인류는 태초부터 두 편으로 나누어 살아왔다. 내 편과 네 편, 아군과 적군, 왼쪽과 오른쪽, 옳음과 그름... 이분볍은 사람들의 마음 아주 깊은 곳까지, 일상의 세밀한 곳까지 침투해 있고 사람들은 저마다의 잣대를 가지고 세상을 둘로 나누어 바라본다. 분열(splitting)이라고 불리는 이 현상은 불안이나 고통으로부터 자아를 방어하기 위해 채택하는 생존법이다.
예전에 나는 좋은 사람, 이타적인 사람, 정의로운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 모든 당위적 가치를 버렸다. 대신 나의 내면에 좋은 사람/나쁜 사람, 이타적인 사람/이기적인 사람, 정의로운 사람/비겁한 사람이 공존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제 나는 스스로 정의롭다고 자처하는 사람을 만나면 심리적으로 부담감을 느낀다. 정의라는 것 역시 입장에 따라 상대적인 가치이며 심리적으로 불안과 투사 방어기재, 나르시시즘, 도덕적 분노 등이 결합된 산물이 아닌가 의심해본다.
투사 : 내면의 부정적인 면을 타인에게 옮겨놓기
투사란 스스로 수용할 수 없는 욕망, 생각, 느낌을 주체의 바깥, 즉 다른 주체에게로 옮겨놓은 방어기재다. 스스로 인정하지 못하는 생각이나 느낌이 다른 대상에게 옮겨져 표출되는 방식은 대체로 혐오, 경멸, 비난, 분노의 방식이다.
우리가 타인에게 느끼는 특별한 감정은 대체로 투사일 경우가 많다. 타인의 이기적인 면을 유독 싫어하는 사람은 대체로 이타적인 사람이겠지만 그 사람의 내면에도 억압당한 이기심이 들어 있게 마련이다. 타인의 성적 방종에 대해 유독 분노하는 사람은 성적으로 도덕적인 사람이겠지만 그의 내면에도 바람둥이가 되고 싶은 욕망이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가 누군가를 혐오하거나 비난할 때 그 행위는 곧 자신에 대한 비난이 되는 셈이다. 투사 방어기재를 벗고 모든 것이 ‘내 탓’임을 인정하게 되면 정신의 힘이 강해지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
투사 이론의 핵심을 가장 극명하게 요약한 게슈탈트의 말이 있다. “모든 타인은 나를 비추는 거울이다.” 타인에 대해 어떤 생각을 품든지, 어떤 말을 하든지 그것은 모두 나의 내면에 있는 요소들이 거울처럼 되비치는 현상일 뿐이라는 것이다. 내면에 억압된 부정적 측면이 많은 사람은 더 자주 타인의 부정적인 면을 보게 되고, 그만큼 더 자주 타인에게 분노를 경험하게 된다.
회피 : 자기 자신과 삶으로부터의 도피
회피 방어기재는 위험하거나 고통스러운 감정, 상황, 대상으로부터 안전한 거리를 유지하려는 행동이다. 그 생존법은 유아기에는 유용했으나 성인이 된 후에는 삶을 가두고 발달을 가로막는 장애물로 작용한다.
동일시 : 타인을 받아들여 나의 일부로 만들기
동일시는 한 개인이 타인의 어떤 점을 받아들여 자신의 일부로 만드는 현상이다. 그것은 무의식 안에서 일어나는 작용이며 자아가 성장하거나 변형되는 방식이기도 하다. 라캉은 동일시를 통해 주체가 탄생한다고 설명한다.
콤플렉스 : 다양하고 풍성한 인격의 근원
콤플렉스는 극복하거나 떨쳐낼 수 있는 게 아니라 자신의 일부로 끌어안고 인정해야 한다. 콤플렉스를 사랑하면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수치스러워했던 그것을 의식 속으로 통합하는 순간 더욱 다양하고 풍성한 인격이 나오게 된다.
콤플렉스를 처리하는 가장 보편적인 방법은 콤플렉스를 숨기고 다른 능력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작은 고추가 맵다는 속담처럼 작다는 결함을 맵다는 기능으로 보완하는 것이다. 전문 용어로는 ‘보상’이라고 한다. 그러나 보상보다 더 근본적이고 바람직한 방법은 콤플렉스를 사랑하는 것이며, 사랑하지 못하겠으면 최소한 그 자체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방법이 있다. 패션에서도 신체적 결함을 가릴 게 아니라 드러내라고 충고한다. 콤플렉스는 심리적 결함이 아니라 심리적 특별함일 뿐이다.
자기애 : 퇴행과 성장으로 난 두 갈래 길
나르시시즘은 병리적 자기애와 건강한 자기애로 나뉜다. 병리적 자기애는 자신이 옳다, 선하다, 정당하다고 느끼는 의식이며 과대한 전능감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건강한 자기애는 병리적 자기애 뒷면에 있는 모든 부정적인 면들을 인식하고 끌어안을 때 비로소 획득되는 것이다.
인간은 태내에서 리비도를 자신의 신체에 투사하는 시기부터 나르시시스트이며, 아기 때 자신이 필요로 하는 것을 전지전능하게 해결해주는 엄마의 이미지에 자신을 동일시하면서 나르시시즘 성향을 강화한다. 아기의 나르시시즘은 성장하면서 리비도적 감각, 욕망, 정서 등을 외부의 대상과 나누는 과정에서 약해진다. 하지만 그 시기에 아기를 정서적으로 보살피고 공감해줄 대상이 없으면 아기는 그 욕망과 감각을 자신의 내부로 돌려 나르시시즘을 강화하게 된다.
얼짱 몸짱 같은 몸 숭배의 사회적 분위기도 나르시시즘의 발로이고, 카메라폰과 디지털카메라가 만들어내는 자기 중심의 영상 이미지도 나르시시즘이다. 느닷없이 불어닥친 웰빙 열풍은 나르시시즘의 종합선물세트 같고, 인터넷 개인 홈페이지는 나르시시즘의 종합 완결편처럼 보인다.
인류는 인간만이 특별하고 위대하다는 나르시시즘을 깨며 발전해왔다고 한다. 코페르니쿠스, 다윈, 프로이드의 발견이 그런 것이다. 나르시시즘은 불안, 시기심과 함께 인간을 성장하지 못하게 만드는 대표적 감정으로 꼽힌다.
자기 존중 : 행복할 가치가 있는 존재라는 느낌
자기 존중감은 스스로 가치 있는 존재라고 느끼는 감정이다. 우리에게 생각하는 능력이 있으며, 생에서 만나는 역경을 이겨낼 능력이 있으며, 필요한 것과 원하는 것을 주장할 자격이 있으며, 스스로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는 감정이다.
짝사랑이나 스토킹처럼 응답 없는 대상을 향해 사랑을 호소하기, 보상 없는 사랑을 일방적으로 보내기, 사랑을 위해 내 삶을 희생하기 등은 전형적으로 자기 존중감이 약한 자의 사랑법이다. 그런 태도는 자신을 병들게 할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 사랑도 파괴한다.
자기 존중감은 자기의 장점과 단점에 대해 충분히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태도에서 비롯된다. 자신의 긍정적인 속성을 거짓 겸손이나 우월감 없이 인정하며, 자신의 부정적인 속성을 열등감이나 자기 비하감 없이 시인하는 마음, 그것이 자기애와 자기 존중감의 본질을 형성하는 토대이다.
몸 사랑 : 몸이 곧 정신이고 육체가 곧 정체성이다
몸과 마음은 긴밀하고도 직접적으로 소통되는 하나의 통합된 실체이다. 정신의 억압된 측면들은 자주 마비나 통증 같은 증상으로 나타난다. 옛 선사들은 몸에 병이 들어오면 마음을 활짝 열어 병을 내보냈다고 한다.
에로스 : 생의 에너지이자 예술의 지향점
에로스는 원초적 생존 욕망이어서 그것이 억압될 때 생은 불모에 가까워질 것이다. 이탈리아 전역에서 만난 고대 예술품이나 미술들에는 고통, 절망, 신성 속에도 에로스가 녹아 있는 듯 했다.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모든 마리아가 그토록 에로틱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미켈란젤로의 노예상도 고통과 비장함 속에 에로티시즘을 담고 있었다.
뻔뻔하게 : 유아적 환상 없이 세상 읽기
‘뻔뻔하게’란 유아적 환상 없는 냉철한 현실 인식, 그 위에 서 있는 엄혹한 생존 방식을 말하는 게 아닐까 싶다. 인간과 생에 대한 환상을 벗고, 에로스가 지닌 생존 욕망을 현실의 삶 위에서 구현하는 방식을 이르는 말일 것이다.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뻔뻔한 사람은 강한 정신력, 흔들리지 않는 주체성, 유연한 포용력을 가진 사람일 것 같았다.
‘뻔뻔하게’를 더 깊이 이해하고 난 후 내가 오래도록 반복해온 생의 서투름의 근본에 무엇이 있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유아적 환상에서 비롯된 온정주의적 세상 인식이 문제였을 것이다. 세상을 보는 틀이 잘못 짜여져 있었기 때문에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에도 오류가 잦았을 것이다. 세상이 내 맘 같지 않다고 서운해 할 때 바로 그 ‘내 맘’이 잘못된 환상 위에 서 있었던 것임을 알게 되었다.
친절 :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지켜보기
인간에게는 호의를 베풀어놓고 상대가 그것에 대해 보답하는지를 지켜보는 무서운 속성이 있다고 한다. 사실 친절은 관대한 사람이라는 자기 이미지를 지키는 수단, 자신이 받고 싶은 보호와 관심을 투사하는 방식, 불안정한 사회에 좋은 평판을 갖고 싶은 사람의 사회적 보험 등의 의미가 있다.
순수하고 사심 없이 살기 위해서는 역설적이게도 세상과 인간에 대해 더 냉철하고 음험한 수준까지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 그것을 최근에야 알게 되었다. 세상과 인간의 속성에 대해 알지 못한 채 순수하게 산다는 것은 자신에게뿐 아니라 타인에게도 위험한 일이었다. 그런 사람은 타인으로 하여금 사기치고 싶은 욕망을 품게 하기 때문이다.
인정과 지지 : 고래도 춤추게 하는 놀라운 힘
인정과 지지는 존재의 안정감을 느끼게 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이 되어준다.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지나치면 ‘인정 중독’이 되어 인정받는 데서 자신의 정체성을 느끼고, 인정받기 위해 일 중독자가 된다.
칭찬은 엄밀한 의미에서 인정이나 지지와는 다른 개념이라고 한다. 칭찬은 우선 시기심의 다른 얼굴이다. 타인이 가지고 있는 물질이나 재능에 대해, 그것을 빼앗고 싶은 마음을 누르기 위해 칭송하는 방법을 택한다는 것이다. 칭찬은 또한 말로써 타인을 움직이려는 방어기재라고 한다. 자기 존중감이 약한 사람일수록 타인의 칭찬에 더 많이 황감해하고, 더 많이 지배당하기도 한다. 내가 알고 있는 비밀 한 가지는 모든 연애 선수들이 동시에 칭찬 선수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공감 : 타인에 이르는 가장 선한 길
공감은 중립적이고 비판단적인 태도로 상대방의 내면을 함께 느끼는 것으로, 모든 정신 치료자에게 필요한 기본 자질이라고 한다. 인간의 부정적인 속성에도 불구하고 위대하고 힘겨운 긍정의 태도를 견지할 수 있는 것은 우리 자신이 모두 그러하다는 자각과, 그 자각을 바탕으로 하는 공감 능력 덕분일 것이다.
공감 능력은 인간 감정의 다채로운 영역에 대해 세밀하게 체험한 위에서 획득되는 능력일 것이다. 내 속에 억압되어 있는 분노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타인의 분노에 대해서도 헤아려볼 수가 없다. 내 마음의 얼룩덜룩하고 울퉁불퉁한 면들을 인정하고 수용할 수 있어야만 타인의 그런 감정에 대해서도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상처받은 자가 치유한다”는 델포이 신전의 신탁은 모든 종교 지도자나 신화 속 주인공이 왜 반드시 고난과 순교의 시간을 뚫고 나가야 하는지를 설명하는 정확한 명제일 것이다.
공감은 연민이나 동감과도 구분되는 감정이라고 한다. 연민은 자신이 상대방보다 더 우월하다는 의식을 전제로 한 감정이고, 동감은 객관적 태도를 잃고 상대방에게 휩쓸리기 쉬운 감정이다. 반면 공감은 중립적이고 비판단적인 태도로 상대방의 내면을 고스란히 함께 느끼는 것이라 한다. 한 인간의 비통, 애착, 공포, 분노.... 그리하여 인간이 그토록 나약하고 불완전한 존재라는 사실을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느끼는 상태이다. 인정과 지지 역시 공감이 전제되어야 실천할 수 있는 삶의 덕목일 것이다.
용기 : 절망 속에서도 전진할 수 있는 능력
용기는 두려움과 절망감을 안은 채 한 걸음씩 앞으로 나가는 능력이라고 한다. 홀로 존재하는 용기, 내면과 직면하는 용기, 선을 지키는 용기 등 우리 생의 각 국면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용기가 없다면 사랑은 단순한 의존 상태가 되고, 용기가 없다면 충성심은 획일주의가 되고 만다. 용기는 일체의 정신적 덕을 가능하게 하는 전제조건이다.
변화 : 세상을 보는 시각과 삶의 방식 수정하기
최근 몇 년간 삶은 내게 실험 같은 것이었다. 내면에서 올라오는 여러 자아를 만났고, 타인과 관계 맺는 방식을 점검해 보았으며, 선배 여성들의 삶에서 앞길을 더듬어 보았다. 결국 생이란 모든 정신의 부조화와 갈등을 끊임없이 조절해 나가는 과정임을 알게 되었다.
인간과 세상을 보는 패러다임이 바뀌면서 삶의 태도에도 변화가 왔다. 유아적 환상에 가득 차 있던 내면 세계에서 빠져 나와 비로소 객관적 실체로서의 외부 현실을 인식하게 된 것 같았다. 타인의 사랑을 구걸하는 대신 나 자신을 사랑하게 되었고, 타인을 돌보는 것으로 나의 가치를 삼는 이타주의 방어기재를 포기했다. 외부의 인정과 지지를 구하는 대신 내가 나 자신을 인정하고 격려하는 훈련을 했다. 남의 말이나 시선에도 신경 쓰지 않게 되었다. 타인의 어떤 말이나 행동은 전적으로 그들 내면에 있는 것이며, 무엇보다 인간은 타인의 언행에 의해 훼손되지 않는 존엄성을 타고난 존재라 믿게 되었다.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모든 감정과 정서의 여러 층위들을 더 세밀하게 느끼고 수용하면서도 건강한 자기 중심성을 획득할 수 있었던 것, 그것은 참으로 고마운 일이었다.
자기 실현 : 진정한 자기 자신이 되는 일
자기 실현은 억압이나 회피 방어를 벗고, 이상화된 자기 이미지도 깨뜨리고, 외부에 보이는 페르소나도 벗고, 진정한 자기 내면에 닿는 일이라 한다. 본성의 자기와 만날 때에야 빛나는 지혜와 통찰의 순간을 맞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