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로드

샌. 2008. 10. 5. 14:17

대재앙을 겪은 지구는 종말을 맞았다.뜨거운 불길이 전 지구를 태웠고 세상은 잿빛이 되었다. 짙은 구름이 태양을 가리고 기온은 내려갔다. 대부분의생물은 멸종했다. 살아남은 소수의 생존자들은 극한상황 속에서 처절하게 살아간다. 파괴된 지구보다 더 무서운 것은 서로를 잡아먹는 인간들이다. 그중에 한 남자와 아들이 있다. 그들은 온갖 고초를 겪으며 따뜻한 남쪽을 향해 길을 나선다.

코맥 매카시의 소설 '로드'[The Road]를 단번에 읽었다. 가슴이 먹먹해지는 소설이다. 지구의 종말을 그린이야기는 많았지만 이렇게책 속으로 빨려들어간 적도 드물었다. 우리가 철석같이 믿고 있는 사실이나 신념들이 산산조각난 상태, 신이나 진리라는 말 조차 꺼낼 수 없는 비참한 상황은 문명이나 인간의 본모습에 대해 숙고하게 한다. 우리를 둘러싼 허위나 가식이 송두리째발가벗겨지고 부끄러운 실체가 그대로 드러난기분이다.

어느 날 지구의 종말이 이렇게 갑자기 찾아올 수도 있다는 사실이 두렵다. 이것은 한 개인의 죽음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세상 자체의 종말은 너무나끔찍한 사건이어서 상상하기도 힘들고 무서운 일이다. 우리가 금과옥조로 떠받들던 모든 것이 잿더미로 사라질 수도 있다는 것, 그리고 분명한 것은 인간이 그런 파괴의 힘을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구 생물을 수십 번이나 멸종시킬 수 있는 핵무기가 강대국들 지하에는 저정되어 있다. 성전(聖戰)을 선포하고 버튼을 누르면 한 순간에 상황 끝이 되는 것이다.

SF소설이나 영화는 대개 이런 묵시론적 암울한 미래를 그리고 있다. 제발 인간이 상상하는대로 역사가 진행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저자는 그래도 한 남자와 아들을 통해 희망을 얘기하고 있다. 소년은 끊임없이 선(善)을 말한다. 소년은 우리 마음 속에 있는 불멸의 빛인지도 모른다. 이 상태로나마 세상을 유지해 나가는 힘의 원천이기도 하다.

이 소설은 현재 영화로 만들어지고 있다고 한다. 어떻게 그렸을지 개봉이 기다려진다. 그리고 '320 페이지의 절망, 그리고 단 한 줄의 가장 아름다운 희망'이라는 이 소설을 소개하는 문구 때문에책의 마지막 구절이 궁금했다.

'한때 산의 냇물에 송어가 있었다. 송어가 호박빛 물속에 서 있는 것도 볼 수 있었다. 지느러미의 하얀 가장자리가 흐르는 물에 부드럽게 잔물결을 일으켰다. 손에 잡으면 이끼 냄새가 났다. 근육질에 윤기가 흘렀고 비트는 힘이 엄청났다. 등에는 벌레 먹은 자국 같은 문양이 있었다. 생성되어가는 세계의 지도였다. 지도와 미로. 되돌릴 수 없는 것, 다시는 바로잡을 수 없는 것을 그린 지도. 송어가 사는 깊은 골짜기에는 모든 것이 인간보다 오래되었으며, 그들은 콧노래로 신비를 흥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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