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이은하와 지율 스님

샌. 2008. 3. 14. 14:16

'우리나라 아름다운 산천과 물줄기가 있는데

그 경치를 이제까지 버려두고 있었네

모두가 버려진 물줄기 속에(새로운 희망이 있어)

모두가 노력한다면(우린 웃을 수 있어)...'

 

이렇게 시작하는'한반도 대운하'라는 노래를 가수 이은하 씨가 불러 논란이 되고 있다. 본인도 운하 찬성론자라고 말했지만 가사를 보면 영락없는 '대운하 찬양 송'이다. 하필새 정권이 출범한지 얼마 안 된 민감한 시기에 이런 노래가 나왔으니 그 저의를 의심할 법도 하게 생겼다.

 

대운하 건설은 후보 시절 이명박의 공약이었지만 그에 대한 논란은 흐지부지 되었다. 지금은 수면 아래로 잠복된 상태지만 신정부 측에서는 언제라도 강행할 태세다. 그런 점에서 운하 건설에 대하여 찬반 논란이 가열되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바람직하다. 그런 논의 과정을 거친 후 국민적 합의를 이루고 나서 공사를 하든지 포기하든지 해야 할 것이다. 운하가 이명박 정부의 전매특허인 양 임기내에 완성하기 위해 서둘러서는 절대 안 된다. 몇 년이 걸리더라도 국토와 환경에 주는 영향을 면밀히 검토하고 시행해야 한다. 오직 경제논리 하나로만 접근할 사안이 아니다. 대운하는 결코 청계천과 같지 않다.

대운하 건설에는 인간의 탐욕이 숨어있다. 부를 위해서는 우리의 소중한 자연환경과 생명을 희생시켜도 좋다는 개발논리의 결정판이 대운하 구상이다. 자연 파괴가 결코 자랑거리가 되어서도 안 된다. 자연은 '스스로 그러함'이니, 노래 가사처럼 그대로 버려두고 있었다고 부끄러워할 이유가 없다. 자연은원래 모습 그대로 두었을 때가 가장 아름다우며, 우리와 공존하는한 몸이다. 나는 대운하 만큼 야만적이고 끔찍한 구상도 없다고 본다. 도대체 그런 발상을 어떻게 할 수 있었는지 솔직히 놀랍기만 하다.

 

이은하 씨는 70 년대 후반 내가 군대 생활을 할 때 가장 인기 있었던 가수였다. 나 역시 그녀의 허스키한 목소리와 여유있었던 몸매가 좋았다. 그러므로 이은하 씨가 이런 노래를 불렀다는 사실, 그리고 그녀가 악플에 시달린다는 소식은 나를 무척 안타깝게 한다. 물론 어떤 정치적 사안에 대하여 개인의 의사는 자유이므로 그녀를 비난할 생각은 없다. 억울함을 호소하는 그녀의 말에도 일리가 있다. 다만 좀더 진지하고 사려 깊은 접근을 하지 못하고 경솔하게 대처한 것 같아 유감이다. 그녀에게 대해서는 권력을 쥔 자나 자본의 편이 아닌 가난하고 소외된 자의 입장에서 세상을 봐 주었으면 하는 바람은 있다. 어떤 면에서 이은하 씨는 대운하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환기시켰다는 점에서 그녀의 의도와는 다르게 공헌을 한 측면도 있다. 세상일은 늘 내 뜻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반면에 지율 스님은 대운하 건설에 대한 반대 입장을 메일을 통해 밝혔다. 지율 스님 역시 몇 년 전 천성산 터널 공사 반대 단식으로 격렬한 찬반 논쟁을 낳았던 장본인이었다. 그때도 역시 주된 논지는 이상한 스님 한 사람 때문에 엄청난 혈세가 낭비된다는 경제 논리였다. 환경 운동의 중심에 서 있었던 스님은 그동안 조용히 산속에서 수행중이었는데 이번에 대운하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히며 다시 모습을 드러내었다.

 

생명을 건 단식투쟁을 했던 스님의 글은 의외로 담담하고 차분하다. 이처럼 대운하에 대한 찬반 논쟁은 냉정하고 이성적이어야 한다. 무조건적인 반대나 비방, 인신공격적인 대응은 바람직하지 않다.그런 면에서 이번 이은하 씨 노래에 대한 반대론자들의 반응은 옳지 않다고 본다. 그런 태도는 익명의 인터넷 시대가 만든 또 하나의 비극이다. 대운하 찬성론자들에게 지금 당장의 경제적 이득이 아니라 우리와 후손이 살아갈 행복한 삶의 터전에 대해 함께 고민하도록 해야 한다. 생명과 자연의 근원적 입장에서 대운하를 볼 수 있어야 한다. 물론 그것이 지난한 길이라는 것을 알지만 시간이 걸리더라도 인내하며 기다릴 수밖에 없다.

 

지율 스님의 '운하, 무엇을 보고 무엇을 체험하기 위한 것일까?'라는 글을 아래에 옮긴다.

 

어린 시절 저는 노량진 본동, 제 1한강교 옆 한강을 건너는 나루가 있는 곳에서 살았습니다. 마을 어르신들은 잉어 낚시로 생계를 유지하는 분들이 많았고 우리들의 놀이터는 주로 한강변의 모래톱이었습니다. 그러나 초등학교에 입학 할 무렵부터 강가의 모래들은 날마다 어디론가 실려 나갔고 얼마 후 한강이 똥물이라는 이야기가 들렸습니다. 낚시를 하시던 어르신들은 미장이나 다른 일거리를 찾아 마을을 떠나셨고 우리는 영문도 모른 채 우리들의 놀이터를 잃어버렸습니다. 사람들은 그 변화를 <한강의 기적>이라 불렀지만 맨발로 모래밭을 뛰놀던 추억은 어느 분의 말처럼 조금 일찍 태어났기에 느낄 수 있었던 따뜻하고 소중한 추억이 되어버렸습니다.


예로부터 치산치수는 나라를 다스리는데 중요한 일로 물을 이용하는 방법은 시대를 따라 변하고 산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 역시 시대를 따라 변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가 보고 경험했던 산과 바다와 강, 그리고 들에서 느꼈던 일상적인 푸르고 소중한 경험들이 사라진 자리에 들어서고 있는 것들입니다.


적요하기만 하던 바다가는 횟집과 여관 골목으로 변했고 고요하고 풍광이 좋은 산 중턱엔 어김없이 골프장이나 호텔, 놀이동산이 들어서 있습니다. 저는 운하를 놓으려는 두 번째 이유인 관광 문제를 이야기하기 전에 우리의 관광문화를 한번 돌보고 어떤 문제가 있는지 살펴봐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관광지는 천혜의 경관을 갖춘 곳에 위치하여 있지만 자연과 문화를 체험하기 위한 시설은 턱없이 부족하고, 그곳에서 먹고 놀고 돈을 쓰게 하는 일을 목적으로 조성 되어 있으며 정부는 그 과정을 부추기고 그 과정을 개발이라 부르며 그 결과를 발전이라고 오인하고 있습니다. 다양성과 창의성은 민주주의에서 추구하는 최고의 가치이며 정치는 다양성을 지향하는 종합 예술입니다. 그러하기에 정부는 마땅히 각 분야와 부서를 조절, 통제하며 각 지역의 특성과 다양성이 파괴되지 않도록 조절 할 필요가 있습니다.


도시는 활동적이고 문화적이어야 하며 농촌은 부지런하고 따뜻해야하며 바닷가는 고요하고 인정이 넘치는 곳이어야 하며 산촌은 쓸쓸하고 사색적인 곳이어야 하며 그곳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밝고 건강해야 합니다. 그러 할 때, 우리는 그곳에 머물고 싶고 그곳으로 여행을 떠나고 그곳에 사는 순박한 사람들과 교통 하고 싶어지는 것입니다.


가치가 획일적이지 않은 것은 자연에 순환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산은 깊고 고요해야하며 물은 맑고 자연스럽게 흘러야합니다. 산속의 깊은 샘에는 도롱뇽과 개구리가 살아야 하고 냇가에는 가재나 피래미가 살아야하고 강에는 은어와 송어가 살아야하고 바다에는 고래가 살아야 합니다. 강에 사는 은어를 냇가에 올려놓아서는 안 되며 바다에 사는 고래를 강에 가두어서도 안 됩니다. 그것을 할 수 있어도 하지 않는 것은 노는 물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산을 깎고 터널을 파서 물길을 만들고 물을 가두어 배를 띄우는 일은 자연의 순환과 흐름을 역행하는 일이며 자연의 흐름을 역행하여 재앙을 초래하는 것을 옛사람들은 인재라고 하였습니다. 모래를 파서 냇가에 물을 채우고 콘크리트 바닥을 준설하면 모래톱 수초 속에 알을 낳던 고기들은 어디로 가게 될까요. 그와 같이 농사 밖에 모르는 어르신들은 호미를 놓고 나면 어디로 가게 될까요. 지역 주민들 모두가 개발을 원하는 것이 아니며 개발을 한다고 해서 지역 주민들이 그 수혜자가 아니 라는 것도 우리는 충분히 경험하여 왔습니다.


제가 고속철도 문제를 다루면서 가장 감명을 받은 사례는 프랑스 람베의 사람들이 고호가 그린 그림의 풍광이 잘리어진다고 하여 반경 100km 내에 고속철을 놓치 못하게 하는 운동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고호가 그렸던 한 폭의 그림이 천문학적인 액수로 팔려나가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고호가 사랑했던 그 마을에 나의 사랑이 심겨질 때입니다. 비록 그 사랑을 구경거리로 만들 수는 없을지 모르지만 우리는 그들이 지키려고 하는 마음을 통해 그 고장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애향심과 천박하지 않은 문화의 향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결핍된 것은 세계화나 관광화가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들의 태어난 고장의 문화와 전통을 잘 이해하는 일입니다. 자신이 태어난 땅과 자신이 쓰고 있는 언어와 문화에 대한 사랑은 재화 이상의 가치로 이 사랑과 자부심이 원동력이 될 때 바로 국가는 비대해지지 않고 부강해집니다.


제가 머무는 곳은 닷새에 한번 버스가 들어오는 오지 마을입니다. 어쩌다 장날이 아닌 날 일을 보러가야 할 때는 어김없이 20 리를 걸어 내려가야 합니다. 눈이라도 쌓인 날은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 만큼 시간이 걸릴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곳에서 80평생 살아오신 분들의 전통적인 농사방법과 옛것을 지켜가는 풍습과 생활방식에는 오히려 배울 점이 많습니다. 1년 평균 소득이 도시사람의 한달 평균 소득도 되지 않는 산촌 마을이지만 이장님댁 칠판에는 불우이웃 돕기 사랑의 전화번호가 적혀있고 성금모금 현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진정한 의미의 지역 개발은 도시화나 휘황한 불빛의 관광화가 아니라 <아픔을 함께>하고 <행복>이 오는 촌락을 이루는 일이며 <도시와 지방의 아이들의 평균화가 이루어질 때, 폐교가 된 학교들이 문을 열고 아이들을 맞이할 때>라고 생각됩니다.


이 글을 보시는 분들께 저는 잠시 컴을 닫고 창을 열고 하늘을 우러러 봐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그 하늘에서 바람이 지나가는 길을 느껴보시기를 바랍니다. 바람이 지나가는 길이 보이시나요? 비록 그 길은 우리의 육안으로 보이지 않지만 우리는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과 그 차가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바람의 길은 비록 직접적으로 생명을 키우는 힘이 없지만 종자를 퍼트리며 대기를 순화하고 감각과 서정을 자극하며 에너지를 분산시키는 역동적인 힘이 있습니다.


자연의 물길은 바람의 길과 같아서 그 흐름들이 눈에 보이지 않아도 그 안에 수많은 생명을 키우고 우리의 감각과 서정을 자극하고 영성을 깨닫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 힘들을 이용 할 수는 있지만 그 흘러가는 것을 가두고 막고 역행해서는 안 됩니다. 물은 배를 띄울 수도 있지만 배를 엎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선조들로부터 세계에 유례없는 아름다운 천혜의 자연 물려받았고 그 혜택을 누리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그동안 아무런 고민과 반성 없이 너무나 많은 것을 잃어버렸고 대운하 건설이라는 이름으로 더 많은 것들을 잃어버릴 위험에 직면해있습니다.


얼마 전 우리는 국보 1호인 숭례문이 전소되는 과정을 참담한 마음으로 지켜보았습니다. 누군가는 200억이면 복원 가능하다고 이야기하지만 진정으로 우리 마음을 슬프게 한 것은 600년의 역사 속에 지켜 온 것을 우리 시대가 지켜내지 못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지금, 아름다운 우리의 산하 역시 같은 위험에 처해있습니다. 만일 지금 이 순간, 우리가 가고 있는 방향을 멈추고 뒤돌아보지 않는다면 뒤에 올 후손들은 <금수강산이라고 부르는 아름다운 산하가 소진되는 그때에 우리의 선조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하고 묻기를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이 시점에서, 운하를 놓으려는 사람들이나 새 정부가 무엇을 할 수 있거나 없는지 고민 할 것이 아니라 우리 개개인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돌아봐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그것이 천성산을 통해서 알게 된 공명의 식구들께 제가 드리고 싶고, 드릴 수 있는 간절한 희망의 이야기입니다. 마음을 모으고 뜻을 함께 하는 곳에서 대의는 이루어지며 자발적인 참여에 의하여 역사는 씌여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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