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나침반

장자[5]

샌. 2008. 1. 25. 09:17

뱁새가 둥지를 트는 곳은 깊은 숲 속의

나뭇가지 하나에 불과하오.

들쥐가 황허의 물을 마시는 것은 제 양만큼에 불과하오.

 

초료巢於深林

不過一枝

偃鼠飮河不過滿腹

 

- 逍遙遊 4

 

요(堯) 임금이 허유(許由)에게 왕위를 물려주려고 하자 허유가 거절하며 한 유명한 말이다. 이 말에는 장자 사상의 핵심이 담겨있다고 나는 생각한다.노자 식으로 말하면 무욕(無欲), 자족(自足), 불감위천하선(不敢爲天下先)이다. 뱁새는 나뭇가지 하나에 만족하고, 들쥐 또한 한 모금의 물로 만족한다.왕위를 차지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자연의 이치에 맞는 자족의 삶이다.

 

허유는 천하를 맡아달라는 요 임금의 말을 듣고 귀가 더러워졌다며 강물에 귀를 씻었다고 한다. 그 뒤에는 이런 이야기도 전해진다.

 

마침 소를 몰고 지나가던 소부(巢父)가 왜 귀를 씻느냐고 물으니 허유는 전후 사정을 설명했다. 이 말을 들은 소부는 껄껄 웃으며 "당신이 숨어 산다는 소문을 퍼트렸으니 그런 더러운 말을 듣는 게 아니오. 모름지기 은자란 애초부터 은자라는 이름조차 밖에 알려서는 안되는 법이오. 한데 당신은 은자라는 이름을 은근히 퍼뜨려 명성을 얻은 게 아니요?" 그리고 소부는 소를 몰고 강을 거슬러 올라갔다. 허유가 물었다. "소에게 물은 안 먹이고 어디로 올라가시요?"

 

그때 소부는 이렇게 말했다. "그대의 귀를 씻은 구정물을 소에게 먹일 수 없어 올라가는 거요."

 

결국 허유의 단계마저 벗어나야 한다는 뜻이다. 장자에서 이야기하는 지인(至人)들의 세계도 그러하다. 참된 자유란 자기마저 잊어버린[無己] 단계에 이르러야 얻어질 수 있다. 아니 지인은 그런 구함 조차 필요 없을 것이다. 우리 같은 소시민들이야 그런 깊고 무궁한 정신의 단계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황홀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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