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시골 소년이 부른 노래 / 최서해

샌. 2007. 8. 18. 13:26

나는

봄이면은 아버지 따라

소 끌고 괭이 메고

저 종달새 우는

들로 나갑니다

 

아버지는 갈고

나는 파고

둥그런 달님이

저 산 위에 솟을 제

시내에 발 씻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어머니가 지어 놓으신

따뜻한 조밥

누이동생 끓여 놓은

구수한 된장찌개에

온 식구는 배를 불립니다

고양이 개까지....

 

여름이면은 아버지 따라

호미 메고 낫 들고

저 불볕이 뜨거운

밭으로 갑니다

 

아버지는 풀을 매고

나는 가라지 뽑고

한낮 몹시 뜨거운 때면

누이동생 갖다주는

단 감주에 목 축이고

버들 그늘 냇가에서

고기도 낚습니다

 

석양이면은 돌아올 때

소 먹일 꼴 한 짐

잔뜩 베어 지고 옵니다

 

저녁에는

어머니가 짜서 지은

시원한 베옷 입고

온 식구 모깃불가에

모여 앉아

농사 이야기에

밤 가는 줄 모릅니다

 

이러하는 새에

앞산에 단풍이 들지요

들에는 황금 물결이 넘쳐 흐릅니다

아버지의 늙은 낯은

웃음에 붉고

어머니는 술 빚기에

분주합니다

누이동생 나까지도

두루두루 기쁩니다

 

머리 드린 장한 벼를

말끔 베어 치워 놓으면

누런 벼알이

많기도 합니다

그러나 땅 임자에게

몇 바리 실리면은

오오, 우리는 또 도로

조밥을 먹게 됩니다

 

일 년애 흘린 피땀

거름 삼아 지은 벼는

도리어 사 먹게 되지요

그리고 눈발이 흩날릴 때

어머니는 무명 매고

아버지는 신 삼고

누이동생 밥 짓고

나는 나무하고....

 

이리하여

아버지도 늙고

어머니도 늙고

누이동생 시집가고

나는 장가 못 들고....

 

아아, 이것이

봄부터 겨울까지

겨울로 봄 또 겨울

내가 하는 일입니다

 

- 시골 소년이 부른 노래 / 최서해

 

집 짓는 사람은 집이 없고, 논일 하는 사람은 쌀을 못 먹는다. 이 시는 1920년대에 씌어진 것이라는데, 예전이나 그때나 지금이나 변한 것은 별로 없다. 가난했고 가진 것 없었던 동무는 집을 뛰쳐 나갔지만 도시에서도 허둥대기만 했다. 그때는 동무의 마음 헤아릴 줄도 몰랐다.

 

애덤 스미스는 '자본론'에서 이렇게 말했다.

 

'커다란 부(富)가 있는 곳에는 어디서나 커다란 불평등이 존재한다. 매우 부유한 1명이 있기 위해서는 최소한 500명의 가난한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 소수의 풍요는 다수의 극빈을 상정하는 것이다.'

 

모두가 풍요로운 부자가 된다는 것은 환상일 뿐이다. 소수의 특권층과 다수의 소외 계층으로 이루어진사회의 미래는 암담하다. 성장과 개발주의의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이런 부조리는 앞으로도 더욱 심화되며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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