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집 / 맹문재

샌. 2007. 8. 3. 14:56

자정인데 작은방에 있는 아내가 급히 부른다

무슨 일인가 싶어 얼른 달려갔는데

거미를 잡아달라는 것이었다

 

거미는 목욕탕 굴뚝같이 높은 방구석에

제법 집다운 집을 지어놓고 있었다

 

나는 거미를 잡을 수 없다고 했다

뜻밖의 대답에 놀란 아내는

왜 잡을 수 없느냐고 항변했다

 

토끼풀꽃 같은 집을 지은 거미에게 원망 듣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거미한테 원망 듣는 것은 무섭고 마누라한테 원망 듣는 것은 안 무섭느냐고 아내가 따졌다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원망을 들을 수밖에 없는 나는

아내의 방을 나왔다

 

자정이 넘어 잡을 수가 없네요

 

- 집 / 맹문재

 

한국인의 유별난 가족주의는 사회 문제의 원인을 진단할때 늘 감초처럼 끼어든다. 가족 사이의 끈끈한 정, 정서적 교류라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내 가족밖에 모르는 가족 이기주의는 자못 심각하다. 세상이야 어떻게 되든 말든 내 가족만 잘 되는 그만이라는 의식이 우리들 가운데는 깊이 박혀 있다. 혈연, 지연, 학연을 중시하는 의식 또한 가족주의의 또 다른 나타남이다.

 

과거 조상들의 누대에 걸친 역사적 경험이 그런 폐쇄적의식을 나았다고 본다. 땅과 집과 내 핏줄에 집착하는 것은 아무 것도 믿을 수 없었던 세상에서 그것들이 마지막 버팀목이 되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그런 경험들은 물질적 탐욕, 가족 이기주의, 공익이나 독립적 개인에 대한 무관심 같은 병폐를 나았다. 가정은 안온한 울타리이기도 하지만, 개인의 성장을 가로막는 끊어지지 않는 탯줄이기도 하다. 현재 한국 사회에 내재된 모순들이 이런 것들과 연관되어 있다고 본다.

 

이 시를 생태적 관점에서 읽을 수도 있겠지만우리 사회의 가족 이기주의를 꼬집는 시로볼 수도 있다. 가정은 배타적 성채가 아니다.가정은 함께 어울리고 연대해야 할 단위이지 서로 경쟁하고 물리쳐야 할 대상은 아니다. 내 자식에 대한 사랑은 전 인류에 대한, 나아가 생명에 대한 자비로 확대되어야 한다. 그때에만 가족애는사랑이라는 본래의 의미를 가지게 된다.

 

아내는 끝까지 거미를 타자로 분리시켜 본다. 여기서 시인의 선택은 '자정이 넘어'라는 단서가 붙어서 더욱 인간적으로 들린다. 내일 아침이면 시인도 아마 거미를 밖으로 옮겨놓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한 밤중, 거미도 집을 지어놓고 고단한 몸 쉬어야 할 것이다. 시인의 따스한 배려가 우리의 가슴속에도 있다면 세상은 한결 훈훈해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