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우화의 강 / 마종기

샌. 2007. 8. 13. 15:00

사람이 사람을 만나 서로 좋아하면

두 사람 사이에 서로 물길이 튼다

한 쪽이 슬퍼지면 친구도 가슴이 메이고

기뻐서 출렁이면 그 물살은 밝게 빛나서

친구의 웃음소리가 강물의 끝에서도 들린다

 

처음 열린 물길은 짧고 어색해서

서로 물을 보내고 자주 섞어야겠지만

한 세상 유장한 정성의 물길이 흔할 수야 없겠지

넘치지도 마르지도 않는 수려한 강물이 흔할 수야 없겠지

 

긴 말 전하지 않아도 미리 물살로 알아듣고

몇 해쯤 만나지 못해도 밤잠이 어렵지 않은 강

아무려면 큰 강이 아무 의미 없이 흐르고 있으랴

세상에서 사람을 만나 오래 좋아하는 것이

죽고 사는 일처럼 쉽고 가벼울 수 있으랴

 

큰 강의 시작과 끝은 어차피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물길을 항상 맑게 고집하는 사람과 친하고 싶다

내 혼이 잠 잘 때 그대가 나를 지켜보아 주고

그대를 생각할 때면 언제나 싱싱한 강물이 보이는

시원하고 고운 사람을 친하고 싶다

 

- 우화의 강 / 마종기

 

사람이 사람을 만나 진실되게 좋아하는 일이 어찌 쉬운 일이랴. 순간적인 격정과 육정을 지나, 맑으면서도 유유한 저 큰 강 같은 관계가 되기가 어찌 손쉬운 일이랴. 그런 교유는 이 시의 제목처럼 우화(寓話)에서나 또는 꿈에서나 가능할지 모른다.

 

그런 사람 한 사람만 있다면 고맙고 기쁜 일이겠다. 또 너에게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다면 인생은 더없이 행복하겠다. 그러나 겉으로는 평온해 보이는 강물이 얼마나서로 몸을 뒤척여야 하는지 사람들은 잘 모른다. 비우고 뒤섞이고 정성을 다해야 저렇게 유장하게 흘러갈 수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큰 강의 내면을 좀체 들여다보지 않는다.

 

비록 꿈에 그칠 망정 '맑고 고운 사람'을 그리며 살고 싶다. 그 사람을 지금 이 세상에서 몸으로 만나지 못하면 어떠랴. 내 마음 속에 그 사람이 살아있는 한, 우화의 강은 언젠가 현실의 강이 될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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