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길 / 오세영

샌. 2007. 7. 25. 14:58

어디로 가는 길이냐

돌다리 건너 회나무 숲 지나

위로 오르는 길

산딸기 어우러진 오솔길에선

기어가는 한 마리 뱀을 밟았다

돌아보면

길바닥에 나뒹구는 칡넝쿨 하나

산철쭉 우거진 모퉁이에선

불현듯 네 맑은 목소릴 들었다

돌아보면

푸두득 나는 뻐국새 하나

본 것이 본 것이 아니고

들은 것이 들은 것이 아닌데

보고 들은 것을 마음에 두고

길을 찾아 쉬엄쉬엄 산을 오른다

벼랑을 돌아 자작나무 숲을 지나

산정의 무덤에서 끝나는 길

어욱새, 속새, 덥거나무 풀숲에서

사라지는 길

 

- 길 / 오세영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인생길을 걸어가고 있다는 것만큼의 기적도 없다. 지금 내가 살아 숨쉬고 있다는 것, 그리고 길을 걸어가고 있다는 것보다 더 신비한 일도 없다. 우리는 살아 있고, 그것만이 전부다.

 

그 길에서 무엇을 만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어느 때는 칡넝쿨에 걸려 넘어지기도 할 것이고, 어느 때는 아름다운 너의 목소리에 황홀해 하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그 길은 안개 낀 숲 사이로 사라진다.

 

우리가제대로 아는 것이란 아무 것도 없다. 길을 걸어가고 있다는 사실 외에 확실한 것은 없다. 본 것이 본 것 그대로일까, 들은 것이 들은 것 그대로일까? 만일 우리에게 확신이 있다면 이렇게 말 많고, 생각 많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에게 확신이 있다면 이렇게 안달하지도, 초조해 하지도 않을 것이다. 벼랑을 돌아, 자작나무 숲을 지나 오르는 길, 이승에서의 이 길은 산정의 무덤에 이르러 끝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