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꽃 / 백무산

샌. 2007. 7. 11. 13:12

내 손길이 닿기 전에 꽃대가 흔들리고 잎을 피운다

그것이 원통하다

 

내 입김도 없이 사방으로 이슬을 부르고

향기를 피워내는구나

그것이 분하다

 

아무래도 억울한 것은

네 남은 꽃송이 다 피워내도록

들려줄 노래 하나 내게 없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내 가슴을 치는 것은

너와 나란히 꽃 피우는 것은 고사하고

내 손길마다 네가 시든다는 것이다

 

나는 위험한 물건이다

돌이나 치워주고

햇살이나 틔워주마

 

사랑하는 이여

 

- 꽃 / 백무산

 

저절로 꽃대가 자라고 꽃이 피어나니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하늘과 땅이 어우러져 향기를 피워내고 열매를 맺게하니 참으로 잘 된 일이다. 그 사실이 얼마나 감사하고 고마우면 시인은 원통하고 억울하다고 했을까.

 

인간은 정말 위험한 물건이 되었다. 유전자 조작이니, 줄기세포니 하며 생명을 건드리는 일을 태연히 하고 있다. 하늘이 하는 일을 대신하려고 까불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인간의 손길이 닿는 곳마다 생명은 시든다는 것이다. 인간은 위험한 물건이다.

 

그런 사실을 자각하고 돌이나 치워주고 햇살이나 틔워주마고 뒤로 물러서는 마음은 아름답다. 인간이 제 분수를 깨달을 때 온생명은 다시 살아난다. 그리고 사랑하는 이여, 당신에게도 말할 수 있다. 사랑은 소유하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떨어져서 애틋하게 지켜봐 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