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내 가슴이 폭삭 내려앉거나 말거나 / 윤희숙

샌. 2007. 6. 30. 12:27

세월이

흐르는 물과 같다는 그것이

인정사정 없이 꼬박꼬박

일수돈 챙기듯 내 나이를 챙기더니

이제 헤아려보기도 찡한 연수(年數)가 되고 말았다

 

귀밑에 흰 머리카락이야 돋았거나 말았거나

사랑하던 이가 뒤 안 보고 떠났거나 말았거나

그래서 마음이야 오래도록 아프거나 말거나

개나리는 피고 지고

산천에 흰눈도 쌓였다가 녹고

강물은 일도 없이 잘도 흘렀다

 

들판의 아찔한 풀향기에 내 가슴이

폭삭 내려앉거나 말거나

아이들은 기쁘게 노래하고 꽃망울 터지듯 쑥쑥 자랐다

 

그대는 슬프지 아니한가

그러거나 말거나, 자라나는 모든 것들이.....

 

- 내 가슴이 폭삭 내려앉거나 말거나 / 윤희숙

 

그러거나 말거나 세상은 흘러간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채 세월은 흐른다.

친구여, 사랑하는 이가 돌아보지 않는다고 노여워 마라. 거울 속 흰 머리카락을 보며 슬퍼하지 마라. 세상은 의례 그런 것이거니, 운명의 수레바퀴를 거역할 수는 없으니....

 

내 고통과 슬픔에 아랑곳 없이 내일이면 또 해가 떠오르고, 사람들은 여전히 깔깔대며 웃을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꽃은 피고 아이들은 기쁘게 노래한다. 한 슬픔은 다른 기쁨으로 연결되고, 한 죽음은 새로운 생명으로 이어진다. 그렇지 않다면 이 세상은 존재할 수 없으리.

 

세상은 고통과 슬픔으로 인하여 존재한다. 우리 모두는 슬픔의 존재들이다. 그러면서도 살아가는 모든 것들이 거룩하고도 갸륵하다. 찬란한 슬픔을 노래하는 생명의 소리를 들어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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