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골목 안 / 조은

샌. 2007. 6. 26. 10:33

실종된 아들의 시신을 한강에서 찾아냈다는

어머니가 가져다준

김치와 가지무침으로 밥을 먹는다

내 친구는 불행한 사람이 만든 반찬으로는

밥을 먹지 않겠단다

 

나는 자식이 없어서

어머니의 마음을 다 헤아리지 못한다

더구나 자식을 잃어보지 않아서

그 아픔의 근처에도 가볼 수가 없다

 

웃을 줄 모르는 그녀의 가족들이

날마다 깜깜한 그림자를 끌고

우리집 앞을 지나간다

그들은 골목 막다른 곳에 산다

 

나는 대문을 잘 열어두기 때문에

그녀는 가끔 우리집에 와 울다가 간다

오늘처럼 친구가 와 있을 때도 있지만

얼마 전 가족을 둘이나 잃은 독신인 친구에게도

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슬픔은

멀고 낯설어 보인다

 

고통에 몸을 담고

가쁜 숨을 쉬며 살아온 줄 알았던 나의

솜털 하나 건드리지 않고 소멸한

슬픔은 또 얼마나 많았을까

 

- 골목 안 / 조은

 

몇 년 전에 조은 시인의 산문집을 읽은 적이 있었다. 자신을 벼랑가로 몰고가며 도시의 달동네 삶을 택한 시인의 순결한 마음이 아프게 다가왔었다. 아마도 시인은 거기서 많은 고통과 아픔들을 만났던 것 같다.

 

이 세상 사람들의 슬픔과 아픔을 다 모은다면 얼마나 될까? 사람들이 슬픔을 속으로 삼키지 않고 모두 다 드러낸다면 이 지구별은 아마 눈물과 한숨소리로 덮일 것이다. 내 솜털 하나 건드리지 못하고 스쳐간 알지 못한 슬픔들이 그 얼마나 많이 있었으랴.

 

시인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울면서 산으로 드는 자들, 죽음의 그림자에 발목이 감긴 채 무거운 몸을 끄는 자들, 뒷모습까지 행복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자들이 어딘들 없을까. 인간의 실존이 근원적 고독과 죽음이라는 한계상황에 놓인 존재이고 보면 삶은 결단코 불행이고 아픔이고 고통이고 슬픔인 것이다. 나는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누구에게나 희망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인생은 슬픔이기 때문에 그 궁극적 슬픔을 완성하기 전에 나날의 일상을 축제로 바꾸어 살자고 한다. 하지만 이에 대한 진정한 이해를 하는 사람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그건 그런 불행과 아픔과 고통과 슬픔과 고독과 죽음이 아직은 자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너무 쉽게 희망과 용서와 구원을 말하지 말자. 값싼 은혜를 남발하지 말자. 시인의 말처럼 인생은 결단코 고통이고 슬픔이고 외로운 것이다. 그 실존적 바탕을 외면할 때 삶은 천박해진다. 우리는 비록 자신만의 불행과 고통에 갇혀있는 존재지만, 그래서 우리 모두는 서로 가슴으로 껴안고 살아야 할 운명이 아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