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논둑에서 울다 / 이승희

샌. 2007. 6. 13. 09:43

이상하지? 여기만 오면 고해성사하고 싶어져. 논둑에 앉아서, 그냥 똥 누는 자세로 앉아서 보면 살아 있는 죄 낱낱이 고백하고, 용서라는 말도 여기에서 듣고 싶어져. 어떤 성자가 다녀가셨나? 얕은 물속 물방울 같은 발자국들, 아 사람의 역사가 저리 아름다우니 내 눈물 보여도 괜찮으리. 잘못 살아 미안하다고 중얼거리지 말고 논둑에 앉아볼 일이다.

- 논둑에서 울다 /이승희

언젠가 고속도로를 타고 가다가 길 옆에 서있는 '기업천하지대본(企業天下之大本)'이라는 광고판을 보고 놀란 일이 있었다. 이제 세상은완전히 노골적이 되었다. '기업 하기 좋은 나라'라는 광고도 이젠 더 이상 낯설지 않다. '행복한 나라' '아름다운 나라'는 이제 구호로라도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이런 물신(物神)이 지배하는 세상에서는 농업이나 연약한 생명들이 하찮게 취급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사람 사는 것이 어찌 돈과 자본만으로 가능하겠는가? 물신을 쫓으면 쫓을수록 영혼의 갈증은 더 심해지기 마련이다. 삶의 본질은 관계 속에 있고, 서로간에 오가는 정서적 교감과 따스함이 없다면 세상은 삭막한 사막과 다를 바 없다. 우리를 살리는 것은 크고 위대한 것들이 아니라, 작고 연약한 것들에 대한 연민과 애틋함이다. 그리고 우리가 미물이라고 부르는 그들에게서 생명의 축복과 아름다움을 본다. 그들 앞에 서면 괜히 눈물이 날려고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