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 / 칼릴 지브란

샌. 2007. 6. 15. 09:31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

그래서 하늘 바람이 너희 사이에서 춤추게 하라

서로 사랑하라

그러나 사랑으로 구속하지는 말라

그보다 너희 혼과 혼의 두 언덕 사이에

출렁이는 바다를 놓아 두라

서로의 잔을 채워 주되 한쪽의 잔만을 마시지 말라

서로의 빵을 주되 한쪽의 빵만을 먹지 말라

함께 노래하고 춤추며 즐거워하되 서로는 혼자 있게 하라

마치 현악기의 줄들이 하나의 음악을 울릴지라도

줄은 서로 혼자이듯이

서로 가슴을 주라

그러나 서로의 가슴속에 묶어 두지는 말라

오직 큰 생명의 손길만이 너희의 가슴을 간직할 수 있다

함께 서 있으라 그러나 너무 가까이 서 있지는 말라

사원의 기둥들도 서로 떨어져 있고

참나무와 삼나무는 서로의 그늘 속에선 자랄 수 없다

 

-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 / 칼릴 지브란

 

옛날에는 무슨 행사가 있을 때마다 패넌트와 기념패를 흔히 만들었다. 심지어 어디 등산을 가도 기념 패넌트를 만들어 나누어 주었다. 좀더 값이 나가는 기념패도 개인에게 주곤 했는데, 제대를 한다던가, 결혼을 한다던가, 또는 직장을 옮길 때도 기념패를 만들어 주는 일이 흔했다.

 

결혼할 때 나도 기념패를 하나 받고 싶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아무도 해주는 사람이 없어 신혼여행을 다녀온 뒤에 내 스스로 기념패를 하나 만들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얼마나 갖고 싶었으면 스스로 만들어 가질 생각을 했을까 싶다.

 

그 결혼 기념패에 나는 지브란의 이 시를 옮겨 놓았다. 결혼은 둘이서 한 몸을 이루는 것이지만, 둘은 독립된 인격체일 수밖에 없다. 각자가 한 인간으로 온전히 설 수 있어야 온전한 가정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지브란의 말에 당시에도 크게 공감을 했다. 우리의 새 삶도 그랬으면 싶었다. 둘이 마주 보며 서서, 둘 사이로는 바람이 지나가고 새들의 노래소리가 들리길 바랬다.

 

그 기념패가 지금은 어디에 있는지 찾아도 보이질 않는다. 최근 이사를 자주 하면서 버리는 물건들에 휩싸여 버려졌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같이 불렀던 이 노래는 우리들의 마음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또한 지금 같이 어려운 때일 수록 지브란의 노래의 의미는 더욱 새롭게 다가온다.

 

'너희 혼과 혼의 두 언덕 사이에 출렁이는 바다를 놓아 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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