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불혹의 여자 / 정숙지

샌. 2007. 7. 7. 11:26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았던

어떤 것에도 흥미를 느낄 수 없었던 나날

내색할 수도 없었지만

이미 굵어져 버린 삶의 이력만큼이나

숨길 수 없이 몰려나오던, 그 쓸쓸함이

전신을 휘감아 오르고

먹어도 채워지지 않던 허기, 마음의 공황

참, 이상도 하지

마른 꽃잎 같다는 생각이 깊어질수록

왜 그렇게 아기를 품고 싶어지던지

다시 한번 누군가의 절절한 사랑이 되어도 보고

몸살나게 탐스런 젖꼭지를 지닌

꼭 그만큼의 나이

홍옥 같은 여자로 돌아가고 싶던지

가을, 열매의 단맛이 더욱 깊어지려면

여름의 강한 태풍을 홀로 이겨야 하듯

나이 마흔의 여자도 그런 거더군

삶에 대한 성찰의 깊고 얕음에 비할 바 없이

기뻐 맞을 수도, 미처 피할 수도 없는

지나고 나서야 고개 주억거리며

더욱 선명히 각인되는 여자의 성

 

- 불혹의 여자 / 정숙지

 

남자들 머리속에서 명멸하는 여자 생각은 성적 환타지가 대부분이다. 남자가 생각하고 말하는 여자의 모습은 거개가 환상이다. 남자에게 있어 여자는 항상 신비의 세계다. 잡힐 것 같으면서도 잡히지 않고, 알 것 같으면서도 영원히 그 속마음을 알아내지 못한다. 오죽하면 '여자도 여자를 모른다'라는 책도 나왔을까. 저자의 말대로 여자는 은하계를 통틀어 가장 난해한 생명체일지 모른다.

 

비록 환상일 망정 남자들은 여자에 대한 자신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이제 50대가 되어 바라보는 여자는 역시 안개다. 그런데 세상을 둘러싼 슬픔이 그 안개속에는 가득하다. 가까이 다가갈 수는 있지만 그 안개속 풍경으로 나는 걸어들어가지 못한다.

 

여자로 살아가고 있는 여성만의 삶의 내밀한 감성은 어떤 것일까? 40대 여인의 농익은 관능미 속에 숨어있는 고독과 불안,갈등이나 바람은 무엇일까? 궁금한 것은 많지만 내가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확실한 것은 나는 아무 것도 모른다는 것, 그리고 불혹의 여자는 아름답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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