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통증 / 조은

샌. 2007. 8. 22. 10:20

광화문 육교 옆 어두운 곳에서

걸음을 멈췄다

등에 큰 혹을 진 팔순의 할머니

입김을 내뿜으며 나를 활짝 반겼다

광주리를 덮은 겹겹의 누더기를 벗겨냈다

숯막 같은 할머니가 파는 것은

천 원에 세 개짜리 귤, 영롱했다

할머니를 놀릴 마음으로 다가간 것은 아닌데

내겐 돈이 없었다 그것을

수시로 잊을 수 있는 것은

초라한 내 삶의 동력이지만

바짝 얼어 몸이 굼뜨고 손이 굽은 할머니

온기 없는 생의 외투는 턱없이 얇았다

그래도 그 할머니

어쩔 줄 몰라하는 내게 웃어주었다

 

- 통증 / 조은

 

밀물처럼 통증이 밀려오는 날이 있다. 까닭이야 있겠지만 나로서는 그 원인을 헤아리지 못한다. 어제는 한밤중에 고속도로를 질주하며 진통제를 맞았다. 그러나 아프지 않은 삶이 어디 있으랴. 그것만이 내 유일한 위로다.

 

시인의 통증의 깊이를 나는 헤아릴 수 없다. 나는 스스로를 극한의 상황까지 밀어넣지 못한다. 그런 점에서 나의 통증은 위선이고 사치다. 언제가 되어야 나는 삶의 진정성 근처에라도 가볼 수 있을까? 통증은 사라져도 그 부끄러움은 가시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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