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담임 선생 / 조향미

샌. 2007. 4. 9. 14:17

아침에 출석부 들고 교실에 들어서면

인상 쓸 일 수두룩하다

앉아라 줄 맞춰라 휴지 좀 주워라

수희 나영이 또 지각이구나

이슬인 오늘도 결석인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째려보고

전달사항 몇 개 툭 던져 두고 나오면

아이들 몇 명 쭐래쭐래 따라 나오며

선생님 오늘 야자 빠져야 해요

치과 가야 해요 생리통이 심해요

학원 보충 있어요 엄마 생신이에요

알았어 알았어 점심시간에 내려와

교직 이십년 의욕도 열정도 시들해진 담임 생활

올해 애들은 유난히 천방지축이야 투덜대지만

생각해보면 마음으로 미운 놈 하나 없다

작년 처음 만나 일주일에 두어 시간 수업할 땐

저기 몇 놈들 정말 고운 구석 없이 밉상이더니

담임 맡은 올해 사흘 걸러 지각하고 결석하는 놈도

온 교실 제멋대로 어지르고 다니는 놈도

수업시간 꾸벅꾸벅 잠만 자는 놈도

곁에 와서 뭐라 뭐라 몇 마디 나누다 보면

마음 풀어진다 잔소리하다가도 픽, 웃음 나온다

속속들이 들여다보면 그 녀석들

지각하고 결석하고 농땡이 칠 만한 딱하고 아픈 사정

모르는 척 쌀쌀하게 나무랄 수만 없다

아이들 처음 만나면 그놈이 그놈 같이 보이다가

차츰 얼굴 보이고 수업 태도 성적도 따지다가

한 일 년 아침저녁으로 부대끼다 보면

몇 겹의 옷 안에 가렸던 본디 맨살 드러난다

멀고 아련한 풍경 아니다 사랑은

풀석이는 먼지 마시며 동거하는 일이다

 

- 담임 선생 / 조향미

 

이런 시는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만 쓸 수 있다.학교 선생은 아이들 때문에 속 상하고 아이들 때문에 웃는다. 만나는 수백 명의 아이들, 생긴 것도 다 다르고 개성도 가지가지다. 버릇 없는 아이, 밉상스런 아이도 있고, 만나면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싶은 이쁜 아이도 있다. 그들 때문에 순간순간 울고 웃는다.이 웬수들 하다가도 피식 웃고 말 때가 흔하다. 그렇게 티격태격하다 보면 나중에는 속 깊은 정이 들기도 한다. 아무리 속을 썩여도 아이들은 역시 아이들이다. 그들 속에서 반짝이는 순수성을 발견할 때 선생은 제일 기쁘다. 몇 겹의 옷 안에 가렸던 본디 맨살 보는 일이 선생의 가장 큰 즐거움이다.

 

사랑은 따스한 봄날이 아니다. 아이들로부터 존경과 대우 받기를 기대하면 할 수록 낙담도 크다. 힘들고 좌절될 때마다 시인의 마지막 말을 기억한다.

 

'사랑은 풀석이는 먼지 마시며 동거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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