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대추 한 알 / 장석주

샌. 2007. 4. 19. 11:04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낱

 

- 대추 한 알 / 장석주

 

대추 한 알 속에 해가 들어있다. 달이 들어있다. 바람도 들어있고, 물도 들어있다. 그리고 내 할아버지도 들어있다. 제사를 지내고 나면 할아버지는 대추 한 웅큼을 장손자에게 집어 주셨다. 달콤한 대추를 먹으며 그때는 몰랐다. 그 속에 먼 조상들까지 숨어있는 줄 그때는 몰랐다.

 

저기 흰 수염으로 앉아 있는 사람, 저 사람 속에도 땡볕이 들어있고,천둥소리 들어있다. 수많은 희열과 고통이 어우러져 저 사람을 만들고 있다. 태풍을 만나고, 사막을 건너고, 힘든 고난의 길 뒤에 부드러운 저 사람 되었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그렇게 울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