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야생 피조물의 평화 / 웬델 베리

샌. 2007. 4. 2. 09:17

세상에 대한 절망이 마음속에 자라날 때

나와 우리 아이들의 삶이 어찌될까 두려워

한밤중 아주 작은 소리에도 눈을 뜨게 될 때

나는 걸어가 몸을 누이네, 야생오리가 물 위에

자신의 아름다움을 내려놓은 그곳에, 큰왜가리가 사는 그곳에

나는 야생 피조물들의 평화 속으로 들어가네

그들은 슬픔을 앞질러 생각하면서 자신들의 삶을 괴롭히지 않는다네

나는 고요한 물의 존재에게로 가네

그리고 느낀다네. 내 머리 위로 낮엔 보이지 않던 별들이

이제 반짝이려고 기다리고 있음을

잠시 세상의 은총 속에 쉬고 나면 나는 자유로워지네

 

- 야생 피조물의 평화 / 웬델 베리

 

웬델 베리(Wendell Berry)라는 이름은 환경서적 등을 통해서 단편적으로 접했지만 그분의 저서를 읽어본 적은 없었다. 그리고 그분이 소설가며 시인으로 많은 책을 내었고, 우리나라에도 여러 권이 번역되어 있다는 것은 이번에 처음 알았다. 특히 웬델 베리가 문명비판가로서 존경을 받는 것은 고향에서 농부로서의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분은 현대적 기계농법의 삶을 거부하고 생태적인 방법으로 농사를 짓는데 자신의 신념대로의 삶을 실제로 실천하며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나에게 컴퓨터는 필요없다'라는 에세이집에서 보듯 컴퓨터 사용마저 거부하는 행위는 우리들에게 현대문명에 대해서 성찰을 하도록 한다. 현대문명을 비판하기는 쉽지만, 자신의말대로 실천하며 그 편리성을 거부하는 삶을 사는 사람을 만나기는 어렵다. 그런 면에서 웬델 베리는 충분히 존경받을 만하다고 생각한다. 현대문명에 대한 가장 강력한 저항은 그 흐름에 동참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현대 기술문명을 거부하고 전통적인 가치를 고집한다는 점에서 웬델 베리 같은 사람들을 보수주의자라고 부를 수도 있다. 그러나 기존 가치 체계를 따르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진보주의자로 부를 수도 있다. 명칭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가 무엇을 바라보고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그에게는 가족, 친구, 마을과 농토를 지키고 돌보는 '전근대적'인 일이 다른 어떤 성공보다 가치있는 일인 것이다.

 

사실 현대문명은 폭력성에 기초하고 있다. 우리가 추구하는 개발과 발전이라는 것은 파괴와 혼란에 다름 아니다. 그 과정에서 이익을 챙기는 자는 소수이고, 나머지는 부스러기라도 챙기려 하지만 대부분은 고통을 받는다. 산업문명이 번창하는 곳에서는꼭 생태계와 인간성 파괴가 동반된다. 피폐할대로 피폐해진 우리 농촌의 현실이 그것을 잘 말해주고 있다. 한미 FTA 협상이 연장 시한을 넘기면서까지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데 만약 체결된다면 이런 현상은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어느 신문은 '전대미문의 농업 학살'이라고 제목을 달았다.

 

'기독교는 자연 파괴에 기여했다는 혐의에서 유죄이고, 그 파괴를 바로잡기 위해 아무 노력도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무능력하다'라고 웬델 베리는 말했다. 신의 창조 질서를 파괴하는 인간의 행위에 대해 아무 경고도 못하고 있는 지금의 기독교는 죽었다고밖에 말할 수 없다. 자연과 생명을 가장 중시해야 할 기독교가 도리어 그 반대로 현대문명의 하수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현세의 안락과 내세의 천국을 약속하는 것 이상으로 인간의 탐욕과 낭비에 대해 종교가 쓴소리를 해야 한다. 신자들을 제대로 각성시켜야 한다고 본다. 참종교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달라이 라마가 답했다. "신이 만든 아름다운 창조세계와 그 속의 생명을 지켜나가는 것이야말로 참종교의 본질이다."

'시읽는기쁨'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대 순례 / 고은  (0) 2007.04.13
담임 선생 / 조향미  (0) 2007.04.09
자비 / 이경  (0) 2007.03.29
거미줄 / 손택수  (0) 2007.03.23
孤島를 위하여 / 임영조  (0) 2007.03.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