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거미줄 / 손택수

샌. 2007. 3. 23. 17:36

어미 거미와 새끼 거미를 몇 킬로미터쯤 떨어뜨려 놓고

새끼를 건드리면 움찔

어미의 몸이 경련을 일으킨다는 이야기,

보이지 않는 거미줄이 내게도 있어

수천 킬로 밖까지 무선으로 이어져 있어

한밤에 전화가 왔다

어디 아픈데는 없냐고,

꿈자리가 뒤숭숭하니 매사에 조신하며 살라고

지구를 반 바퀴 돌고 와서도 끊어지지 않고 끈끈한 줄 하나

 

- 거미줄 / 손택수

 

눈에 보이지 않는 거미줄이 어디 부모 자식 사이에만 있겠는가. 모든 존재들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끈으로 상호 연결되어 있다. 우리는 모두 거대한 네트워크의 일원이다. 내가 지금 여기서 생각하고 행위하는 모든 것이 전 우주의 존재들에게 파문을 일으킨다. 우리 모두는 서로가 하나로 이어진 존재들이다.

 

오늘 내가 이렇게 우울한 건 멀리 있는 당신이 그 무언가로 아파하기 때문인지 모른다. 내가 이렇게 그리움으로 잠 못 이루는 것은 그대와 연결된 끈이 자꾸 흔들리기 때문인지 모른다. 아, 내가 이렇게 외로운 건 알지 못하는 그대 역시 외로움에 떨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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