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孤島를 위하여 / 임영조

샌. 2007. 3. 20. 12:45

면벽 100일!

이제 알겠다. 내가 벽임을

들어올 문 없으니

나갈 문도 없는 벽

기대지 마라!

누구나 돌아서면 등이 벽이니

 

나도 그 섬에 가고 싶다

마음속 집도 절도 버리고

쥐도 새도 모르게 귀양 떠나듯

그 섬에 닿고 싶다

 

간 사람이 없으니

올 사람도 없는 섬

뜬구름 밀고 가는 바람이

혹시나 제 이름 부를까 싶어

가슴 늘 두근대는 절해고도絶海孤島여!

 

나도 그 섬에 가고 싶다

가서 동서남북 십리허에

해골 표지 그려진 금표비禁標碑 꽂고

한 십년 나를 씻어 말리고 싶다

 

옷 벗고 마음 벗고

다시 한 십년

볕으로 소금으로 절이고 나면

나도 사람 냄새 싹 가신 등신等神

눈으로 말하고

귀로 웃는 달마達磨가 될까?

 

그 뒤 어느 해일 높은 밤

슬쩍 체위體位 바꾸듯 그 섬 내쫓고

내가 대신 엎드려 용서를 빌고 나면

나도 세상과 먼 절벽 섬 될까?

한평생 모로 서서

웃음 참 묘하게 짓는 마애불磨崖佛 같은

 

- 孤島를 위하여 / 임영조

 

내 속에 있는 내가 무섭다. 태고적 어느 별 속의 혼돈과 흑암이내 속에 도사리고 있다. 도망치려 발버둥치지만 부처님 손바닥 안이다. 인간 본성의 탐욕과 난해함 앞에서 나는 두 손을 든다. 한 발 앞으로 나가면 두 발 뒤로 물러선다. 내 발목에 끈질기게 달라붙는 이 어두움에게 나는 연신 무릎을 꿇는다. 영혼이곤고할 수록 나는 자꾸 위선의 옷으로 치장을 한다.

 

그 섬은 어디에 있는가? 그 섬에 가서 한 십 년 볕으로 소금으로 나를 씻어말리고 나면 나도 사람 냄새 싹 가신 등신(等神)이 될 수 있을까? 추악하고 음탕한 내 영혼이 말갛게 헹구어질 수 있을까?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하며 더 이상 도리질치지 않아도 될까?

 

그 섬에 가고 싶다. 마음 속 집도 절도 버리고 귀양 떠나듯 그 섬에 닿고 싶다.그 섬에 가서 한 바탕 통곡을 하고, 한 바탕 너털웃음을 웃고, 세상의 그리움도 갈망도 해풍에 다 날려버리고 싶다. 그리고 아무런 표정도 없는 바위가 되고 싶다.... 그 섬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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