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비가 오려 할 때 / 문태준

샌. 2007. 3. 6. 13:52

비가 오려 할 때

그녀가 손등으로 눈을 꾹 눌러 닦아 울려고 할 때

바람의 살들이 청보리밭을 술렁이게 할 때

소심한 공증인처럼 굴던 까만 염소가 멀리서 이끌려 돌아올 때

절름발이 학수형님이 비료를 지고 열무밭으로 나갈 때

먼저 온 빗방울이 개울물 위에 둥근 우산을 펼 때

 

- 비가 오려 할 때 / 문태준

 

그녀가 뒤돌아 앉아 소리 없이 운다. 가끔씩 휴지통의 휴지만 조심스레 뽑혀나갈 뿐이다. 그녀에게는 그것이 무척 서러운가 보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그녀의 눈물이 비를 부른다. 그래서 비 오기 전의 수런거림으로 마음은 바빠진다. 산다는 건 이렇듯 어쩔 수 없이 수런거리는 것이다. 그녀가 소리도 없이 울고, 나는 뒤에서 아프게 지켜 보고, 어느새 먼저 온 빗방울들이 개울물 위에 둥근 우산을 만들고 있다.